유적지 전경
1. 개요
차가타이어 سغناق 카자흐어 Сығанақ / Syğanaq
영어 Sighnaq
카자흐스탄 남무의 유적. 크즐오르다와 튀르키스탄 사이에 있는 시르다리야 강 동안의 평지에 위치한다. 지명은 '피신처'란 뜻으로, 13-14세기 킵차크 칸국의 동쪽 부분인 청장 칸국과 15-16세기 우즈베크 칸국의 수도였다. 다만 오랜 전란으로 쇠퇴하여 현재는 유적으로 남아있다. 지금도 내성과 외성의 형태가 잔존하며, 건물군 유적은 카자흐스탄 우표의 모델 중 하나이다.
2. 역사
10세기 오우즈 튀르크인들이 정착해 세운 도시로, 이슬람 상인들과의 교역이 이루어졌다. 다르 알-쿠파르, 즉 이교도들의 땅으로 알려진 일대의 특산물은 활이었다. 12세기 시그나크는 킵차크 연맹의 수도였고, 1152년과 1195년 등 인근 호라즘 왕조의 습격 (가즈와트)에 시갈렸다. 후자의 경우 카이르 토쿠 칸이 격퇴해내었다. 하지만 13세기 초엽, 중앙아시아의 패권자로 떠오른 호라즘 술탄 알라 웃 딘 무함마드가 도시를 점령했다. 그리고 1220년, 몽골 제국군이 포위 끝에 시그나크를 함락하고 주민들을 학살했다. 그후 시그나크는 재건되어 청장 칸국의 수도로 번영하다가, 14세기 말엽 티무르 제국령이 되었다.
1427년, 킵차크 칸국을 통합한 바라크 칸은 티무르 제국의 샤 루흐에게 시그나크 할양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무력으로 점령했다. 다만 이듬해 바라크 칸이 사망하자 티무르 제국은 시그나크를 수복했다. 다만 1446년, 킵차크 칸국의 방계에 해당하는 우즈베크 칸국의 창건자 아불 하이르가 시그나크를 점령하여 수도로 삼았다. 1457년, 도시 남쪽 외곽에 벌어진 쾨크 카샤네 전투에서 칼미크 부족에게 패하고 기세가 꺾인 우즈베크 칸국은 시르나크에서 출생한 무함마드 샤이바니 칸의 치세에야 중흥할 수 있었다. 오랜 전란으로 쇠퇴한 시르나크는 16세기 우즈베크 칸국의 분열 후 카자흐 칸국령이 되었으나, 쇠락이 이어진 끝에 결국 버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