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7 22:33:46

송중직


성명 송중직(宋重稙)
이명 송중식(宋重植)
생몰 1899년 ~ 1928년 5월 18일
출생지 황해도 송화군 운유면 사기리
사망지 경성형무소
추서 건국훈장 독립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4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송중직은 1899년생이며 황해도 송화군 운유면 사기리 출신이다. 그는 1921년 황해도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같은 해 10월 2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이동진(李東鎭)ㆍ최수련(崔壽連)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파견된 교통부 참사 윤응념(尹應念)과 함께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은 1923년 3월 24일 경기도 부천군 영종면 중산리에 거주하는 김성대(金聖大)에게 임시정부가 발행한 500원 공채 1매를 보이고 김성대 명의의 서약서 1통을 받았다. 같은 달 28일 오후 9시경 이동진ㆍ김원흡(金源洽)ㆍ윤응념과 함께 부천군 대부면 북리에 거주하는 김규환(金圭煥)에게 임시정부 소속임을 밝히며 독립운동자금을 요구하여 서약서 1통을 받았다. 송중직은 동리에 소재한 김종윤(金鍾允)의 집에서도 군자금 220원을 모집하다 체포되었다.

이후 1923년 9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제령 제7호 위반 및 강도 혐의로 징역 8년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4년 1월 26일 징역 6년으로 감형되었다. 같은 해 12월 2일 복막 결핵으로 형집행이 정지되어 출옥하였다. 그는 이후에도 독립운동 의지를 꺾지 않고 1925년 10월 5일 오후 10시경 임택종(任澤鍾)ㆍ김재도(金在道)와 함께 황해도 송화군 율리면 세진리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했으며, 10월 26일 오후 10시경 이택종, 김재도, 이태형(李泰亨)과 함께 황해도 은율군 은율면 남천리 등지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았다.

그러나 또다시 발각되어 체포된 그는 1926년 1월 19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제령 제7호 위반 및 강도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1928년 5월 18일 경성형무소에서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송중직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