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3A380 0%, #00C499 20%, #00C499 80%, #03A380); color: #ece5b6;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00C499> 추존 존령 | ||
태중부군 | 회음부군 | 제음부군 | |
중종사사부군 | 특진부군 | ||
<rowcolor=#00C499> 추존 황제 | |||
문제 | 안제 | 소명제 | |
충렬왕 | 문헌왕 | ||
<rowcolor=#00C499> 비정통 황제 | |||
임하왕 | 예장왕 | 무릉왕 | |
민제 | 영가왕 | 소선 | |
}}}}}}}}} |
<colbgcolor=#00C499><colcolor=#ece5b6> 소량 무제의 4대조
소할 | 蕭鎋 |
|
본관 | 난릉 소씨 |
휘 | 할(鎋) |
부친 | 회음부군 |
자녀 | 중종사사부군 |
시호 | 제음부군(濟陰府君) |
1. 개요
[clearfix]
1. 개요
회음부군(淮陰府君) 소정 서진 시대의 인물로, 영가의 난 당시 아버지인 회음현령 소정을 따라 진릉군(晉陵郡) 무진현(武進縣) 동성리(東城里)로 거주지를 옮겼다. 이후 그의 거주 일대는 남난릉군(南蘭陵郡)으로 개칭되었으며 소할은 그곳의 제음군태수(濟陰郡太守)를 역임했다.이후 아들인 소부자도 난남릉군의 관료를 역임했고, 현손인 양무제가 소량을 건국하자 소할은 '황고조제음부군'(皇高祖濟陰府君)으로 추존되어 칠묘에 위패가 안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