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1 21:22:26

소부자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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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와티니 제7대 국왕
소부자 2세
Sobhuza II
파일:5e3afdbd2edcb001974bb7ea.jpg
<colbgcolor=#131230><colcolor=#ffffff> 왕호 소부자 2세 (Sobhuza II) 
출생 1899년 7월 22일
스와질란드 보체
사망 1982년 8월 21일 (향년 83세)
스와질란드 음바바네
재임 에스와티니 국왕
1899년 12월 10일 ~ 1982년 8월 21일(82년 254일)
대관식 1921년 12월 22일 

1. 개요2. 생애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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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스와티니의 7대 국왕이자 現 에스와티니 국왕인 음스와티 3세의 아버지로 섭정 기간을 포함해 총 83년동안 왕위에 군림하며 실질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재위를 한 군주로 유명하다.[1][2]

2. 생애

1899년 7월 22일 응과네 5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태어난지 단 5개월만에 아버지를 잃으면서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다. 그러나 왕위직을 수행하기에는 너무 어렸기에 그의 할머니인 라보치베니 음들룰리가 그를 대신해서 섭정을 하였다.

좀보체의 국립학교를 졸업한 뒤, 남아프리카 공화국 동케이프주의 러브데일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1921년 12월 22일 할머니인 라보치베니로부터 국정 권한을 이양받아 대관식을 거행하였다. 대관식을 거행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소부자 2세는 1907년 영국이 설정한 토지 수탈 문제에 대처하여 영국 국왕 조지 5세와 회담을 갖고 스와지인에게 토지를 반환하도록 요청하였고, 1929년에는 추밀원에 문제를 제기하였지만 보호령법에 따라 청원이 거부당한다. 자치령 시대의 스와지 국왕은 의례적인 존재였으나, 소부자 2세는 점차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1953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에 참석했다.[3] 그는 영국이 주창한 웨스트민스터 시스템에 반대의사를 표명하며 왕당파 멤버로 굳힌 인보코도보 국민운동을 창당하였다.

1968년 9월 6일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영국으로부터 정식으로 스와질란드 국왕으로 승인받는다. 그는 부족의 관습을 유지하고 자신의 가진 영향력을 배경으로 체제 변환을 꾀한다.

1972년에 치러진 선거에서 그가 세운 정당이 대승을 거두었고, 1973년에는 영국의 지도에 따라 제정된 헌법과 의회를 중단하고 국왕 친정으로 체제를 되돌렸다. 이로써 그와 그의 측근들이 국정 전반에 걸쳐 전권을 장악하고 총리 이하 전 각료를 국왕이 지명하게 되었다.

1978년 새 헌법을 제정해 각 지방에 의석을 배분하는 양원제를 시행해 부족을 수중에 넣었으나 국왕에게는 의회 거부권이 부여되는 등 의회의 권한은 제한적으로만 있었다.

또한 그는 풍부한 천연자원을 활용해 경제성장을 이뤘고, 백인들이 소유하고 있던 땅도 그의 치세 아래 스와지인들의 관리를 받게 됐다.

1980년 재위 80주년을 맞은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반투스탄 철폐를 요구하며 격리된 스와지인의 석방을 촉구했다.

재위 83년째인 1982년 8월 21일에 음바바네에서 세상을 떠났다.

3. 기타

  • 소부자 2세는 부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여러 여자와 결혼했다. 2000년 왕립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그는 1920년부터 1970년까지 70명의 왕비를 맞았고 210명의 왕자와 공주를 두었다.
  • 자녀들 중 180명이 유아기를 살았고 97명이 성인이 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그가 사망한 시점에 1,000명 이상의 손자를 두었다고 한다.


[1] 고구려의 태조왕과 고대 이집트의 페피 2세는 90년이 넘게 재위했으나 워낙 고대 시대 사람이라 기록이 사실인지 분명하지 않는다. [2] 한국사로 치면 구한말에 즉위해서 5공화국 시기에 세상을 떠났다. 다만 83년의 재위 기간 중, 섭정기간 22년을 제외하면 실질 재위 기간은 라마 9세 엘리자베스 2세보다 8년 정도 적다. [3] 그때 당시에는 몰랐겠지만, 이후 둘 다 오랜 세월을 재위한 군주로 기록에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