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이집트 황소 신 '아피스' 석상 |
2. 사례
유라시아의 고대 문명에서 보편적으로 묘사되는 신앙으로 이중에서도 인도유럽어족계열에서 주로 나타난다. 문명이 발생하기 이전부터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 벽화를 비롯해 유럽 및 중동 전역에 흩어져 있던 많은 암각화에서 초원을 맹렬히 내달리거나 활과 창에 찔려 다치고 쓰러진 거대한 오록스들의 모습이 묘사되었다.구석기인들은 주문, 무용, 신화 등의 도움을 빌어 소의 정신과 육체적 존재를 이해했다. 인간의 조상들은 소의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숭배했으며, 그 고기를 섭취하여 그들의 정신과 일체가 되려고 애썼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특정한 외모의 소를 아피스(Apis)라고 부르며 창조신 프타의 현신으로 숭배했다. 살아있을 때는 파라오와 버금가는 대접을 하여 가장 좋은 곡식으로 여물을 해서 먹이고 가장 아름다운 암소들과 짝짓기를 시켜주다가, 죽으면 파라오와 마찬가지로 미라로 만들어 훌륭한 묘지에 묻어주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일대 역시 황소(숫소)는 바알이나 최고위신 엘의 상징으로 암소는 이슈타르, 인안나의 상징으로 쓰였다.
구약성서에선 일명 금송아지라 불리는 우상과 이에 반발하는 유대교 예언자들의 대립이 구약의 주된 스토리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시작은 출애굽기로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들이 황금으로 만든 소 우상을 만들고 이것을 자신들을 구해준 신이라고 숭배했는데, 마침 십계명을 받아적기 위해 시나이 산으로 올라갔다 하산하며 이 광경을 본 모세는 분노하며 우상을 파괴해버린다.
당대에 금송아지 상은 보편적인 최고신을 묘사하는 상징이였기에 이들은 당시 이 일대의 관습에 충실했던 것이였지만, 유대교의 율법적인 관점에서 보면 금기시 되는 우상으로 신( 야훼)을 묘사했을뿐 아니라 그마저도 유대인들을 구원한 신이 야훼가 아닌 바알로 여긴 신성모독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금송아지 숭배는 수시로 등장하며 여로보암 1세는 다윗 왕조로부터 북 이스라엘 왕국을 분리 독립시키면서 금송아지 신상을 만들며 이것이 바로 야훼이니 야훼를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갈 필요가 없다고 선포하였고 바알 신도들을 멸절시키고 야훼 신앙을 회복했다는 예후 왕도 금송아지를 야훼의 현신으로 섬겨 엘리사의 뒷목을 잡게 했다고 한다.
고대 미노아 문명에서도 황소를 숭배하고 황소 뿔 위를 젊은이들이 재주넘기하는 종교적 의식을 한 정황이 크노소스 궁전 벽화 등으로 남아있고 미노아 문명 멸망 후 이 유적을 발견한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것을 나름대로 해석한 것이 미노타우로스 신화로 추정된다. 물론 미노아 문명 이후에도 그리스 신화등에서 포세이돈, 제우스등의 최고위 남신을 상징하는 동물로서도 황소가 자주 인용된다.
켈트 신화에서 소는 말과 함께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며, 특히 붉은색의 황소는 저승신 던(Donn)을 상징하는 동물이라고 여겼다.
고대 게르만족도 황소를 힘의 상징으로 신성시하곤 했다. 특히 뿔이 클 수록 우러러보았다.
이란에서 기원해 로마 제국에서 널리 믿어졌던 승리의 신 미트라를 섬기던 미트라 교에서는 미트라가 신성한 황소를 희생 제물로 죽임으로써 우주가 창조되었다고 믿었고[1] 동시에 사제가 황소를 쓰러트리고 도살하는 의식이 미트라교의 주요 의식이었다.[2]
힌두교에서는 아직까지 인도혹소[3]를 신성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모든 소가 신성시되는 것이 아니다. 인도혹소가 아닌 소들은 숭배하지 않고 다리가 다섯 개인 기형소나 흰 소, 암소가 신성시되며, 평범한 수소는 노점상의 채소를 훔쳐먹다 몽둥이로 얻어맞고 쫓겨나는 취급을 당한다. 이는 사람에게 카스트를 적용하듯 소에게도 카스트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인도에서는 낮은 카스트의 소들은 도축당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