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성달영(成達永) |
본관 | 창녕 성씨 |
생몰 | 1873년 6월 15일 ~ 1933년 1월 30일 |
출생지 | 충청남도 아산군 도고면 석당리 |
사망지 | 충청남도 아산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성달영은 1873년 6월 15일 충청남도 아산군 도고면 석당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의 국권이 일제에게 넘어가자 이에 분노하여 민종식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해 홍주성 전투에 참가했다. 그러나 민종식이 패하고 일본군에게 체포되자 김재정(金在貞)의 집에 은거하며 재기를 꾀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1910년 한일병합이 선포되자 독립운동 방안을 모색했다. 그러던 1917년, 그는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집활동을 폈으며, 장두환(張斗煥)· 김경태·임봉주(林鳳柱) 등이1918년 1월 충남 아산군 도고면장 박용하(朴容夏)를 처단할 때 자신의 집을 논의장소로 제공하며 거사를 도왔다. 그러나 1918년 초 대한광복회 조직이 일제에게 발각되면서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러야 했고, 1933년 1월 30일에 아산에서 사망했다.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성달영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