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9 15:49:03

선우섭

1. 정주시 출신 독립운동가, 선우섭2. 평양시 출신 독립운동가, 선우섭

1. 정주시 출신 독립운동가, 선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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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선우기경 (鮮于冀京)
출생 1885년
평안북도 정주군 고현면 현장리
사망 1920년 11월 11일 (향년 35세)
만주 봉천성 통화현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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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섭은 1885년생이며 평안북도 정주군 고현면 현장리 출신이다. 그는 1920년경 봉천성 통화현 입봉에서 청년단 검찰로 활동했다. 그러나 1920년 11월 4일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11월 11일 통화현에서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선우섭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 평양시 출신 독립운동가, 선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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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김창 (金昌), 클리멘티 페트로비치
출생 1899년
평안남도 평양시
사망 1938년 3월 19일 (향년 39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추서 건국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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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섭은 1899년생이며 평안남도 평양 출신이다. 그는 일찍이 만주로 망명했고 남만주와 상하이 일대에서 활동했다. 192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가담하여 남만주와 상하이 일대의 지리에 정통한 점을 주목받아 선전대 선발대 소속으로 임시정부와 블라디보스토크 사이 연락을 담당했다. 1922년 중국 요녕성 안동현 이륭양행 직원인 최준(崔俊)과 독립신문 기자 오인석이 상하이로부터 오는 독립신문을 각지에 배포하는 역할을 수행하다 5월에 상하이로 돌아가자, 그는 그 후임을 맡아 강경선과 함께 각 방면의 연락과 정보 수집을 담당했다.

이후 그는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에 가담했고, 1923년 4월 11일 고려공산당청년회 대표로 국민대표회의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선우섭을 비롯한 여운형, 최충신(崔忠信), 여인빈(呂仁斌), 안동옥(安基玉) 등 대표 5명의 제의안(提議案)에 따라 각 독립운동단체를 통합하여 ‘일대독립당(一大獨立黨)’을 조직하기로 결의했다. 이후 이들은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신 정부를 수립하려 했지만 일제와 갈등을 빛고 싶지 않았던 소련의 제지로 무산되었다. 선우협은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공산주의 단체에 가담해 활동하다가 이오시프 스탈린 대숙청에 말려들어 1938년 3월 19일에 처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선우섭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