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3458><colcolor=#fff> 샘 심즈 워커 Sam Sims Walk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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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5년 7월 31일 | |
미국 뉴욕주 웨스트포인트 | ||
사망 | 2015년 8월 8일 (향년 90세) | |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샬롯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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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버지니아 군사대학교 미국육군사관학교 미국 지휘참모대학교 미국 국방참모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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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군인 | |
복무 | 미군 (1946~1978) | |
최종 계급 | 대장 | |
참전 |
6.25 전쟁 베트남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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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1925년에 미국 뉴욕 웨스트포인트에서 월튼 워커의 무매독자 외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인 월튼 워커가 37세 때 태어난 늦둥이였다. 샘 워커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군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1941년 버지니아 군사대학(VMI)에 입교했으며, VMI 재학 중 미 육사 시험을 준비하여 이듬해인 1942년 웨스트포인트 미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했다. 1946년 미 육군 보병 소위로 임관, 주일미군 제11공수사단에서 일본 점령군으로 복무했고, 6·25전쟁 당시에는 미 육군 제24보병사단 보병 중대장으로 참전했다.6·25 전쟁 초기 1년간 참전하여 초기 지연전과 낙동강 방어전투, 38선 돌파, 중공군 공세로 인한 후퇴를 다 경험했다. 샘 워커는 6·25 전쟁에서 은성무공훈장을 수훈했다. 그러나 1950년의 크리스마스를 앞둔 겨울 자신에게 직접 훈장을 달아주기 위해 아들이 있던 부대로 오고 있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때 미국 정부에서는 샘 워커에게 부친상을 치르라고 특별휴가를 주고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까지 휴가를 가라고 강권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상을 치르는 대신 끝까지 전장에 남았다는 이야기가 항간에 퍼져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당시 샘 워커 대위는 부친의 영정을 미국으로 운구했고, 상주로서 장례식을 끝까지 지켰다. 장례식 이후 규정에 따라 휴가 복귀하여 1년의 파병기간을 끝까지 다 채우고, 1951년 미 육군 보병학교로 전근, 교관으로 근무했다. #
1957년 지휘참모대학 졸업, 미 육군본부, 미 육군사관학교 전술장교, 주한미군 사령부를 거쳐 1963년 국방참모대학을 졸업했다. 30보병 1대대장을 거쳐 베트남 전쟁에 참전, 제1보병사단 작전참모(G-3)로 근무했으며, 중령 계급으로 동 사단 2여단장으로 애틀보로 작전(Operation Attleboro)에 참가했다. 1년 간의 베트남전 파병을 마친 이후 하버드 대학교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했다. 육군참모차장실 동원기획관 근무, 미국외교협회(CFR) 파견 근무, 1968년 준장 진급, 제82공수사단 부사단장, 미 육군 사관학교 생도대장, 소장 진급, 제3보병사단장, 중장 진급, 미 육군 전력사령관, 1977년 미군 역사상 최연소 육군 대장으로 진급 후 주터키 터미연합 남동 지상군(COMLANDSOUTHEAST) 사령관 역임. 아버지 윌튼 워커 중장이 대장으로 사후 추서되었기 때문에 미국 육군 역사상 최초로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대장을 단 군인으로 남게 되었다.[1] 1978년에 퇴역했다.
퇴역 이후에는 1981~1988년까지 버지니아 군사대학(VMI) 총장을 역임했고, 한미국제교류재단 이사, 한미 안보연구 협의회 이사, 국립 디데이 박물관 이사, 터미친선협회 이사를 지냈다. 2005년 미 육군 사관학교 총동문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2015년 8월 8일 별세하였다. 향년 90세.
슬하의 아들들도 다 군대에 입대했고, 그 중 한 명은 대령으로 제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