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31 13:33:41

상원부인



上院夫人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아자개의 부인3. 견훤의 부인4. 대중 매체에서

1. 개요

후삼국시대의 인물. 삼국유사에 인용된 이비가기, 이제가기에서 등장하는 인물로, 아자개의 부인인 상원부인과 견훤의 부인인 상원부인 총 2명이 등장한다.

2. 아자개의 부인

아자개의 첫째 부인은 상원부인(上院夫人)이요, 둘째 부인은 남원부인(南院夫人)으로 아들 다섯과 딸 하나를 낳았다.
慈之弟一妻上院夫人, 第二妻南院夫人, 生五子一女.
삼국유사 제2기이 후백제 견훤, 삼국유사가 인용한 이비가기(李碑家記)의 내용 中

아자개의 첫번째 부인. 이비가기(李碑家記)에 의하면 아자개는 2명의 부인을 두었으며 5남 1녀를 두었다고 짤막하게 언급되었다.

아자개의 3남, 4남, 5남인 용개, 보개, 소개는 개(蓋)라는 돌림자를 쓰는데 비해 견훤, 능애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견훤과 능애만 상원부인의 소생이고 나머지 자녀들은 남원부인의 소생이라는 설이 있다.

일연이 인용한 고기에는 견훤의 출생에 대한 이설을 소개하는데 다음과 같다.
또 ≪고기(古記)≫에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부자 한 사람이 광주(光州) 북촌(北村)에 살았다. 딸 하나가 있었는데 자태와 용모가 단정했다. 딸이 아버지께 말하기를, ‘매번 자줏빛 옷을 입은 남자가 침실에 와서 관계하고 갑니다’라고 하자, 아버지가 말하기를, ‘너는 긴 실을 바늘에 꿰어 그 남자의 옷에 꽂아 두어라’ 라고 하니 그대로 따랐다. 날이 밝자 실을 찾아 북쪽 담 밑에 이르니 바늘이 큰 지렁이의 허리에 꽂혀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아기를 배어 한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나이 15세가 되자 스스로 견훤(甄萱)이라 일컬었다.

다만 해당 기록은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한 이후 만들어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상주 출신인 견훤은 신라 서남부에 재지기반이 없던 인물이었기에 자신의 가계를 윤색한 전승일 가능성이 크다.

3. 견훤의 부인

李磾家記云, “萱有九子, 長曰神劒 一云甄成, 二子太師謙腦, 三子佐承龍述, 四子太師聦智, 五子大阿干宗祐, 六子闕, 七子佐承位興, 八子太師青丘, 一女國大夫人, 皆上院夫人所生也.
≪이제가기(李磾家記)≫에는 “견훤에게는 아들 아홉이 있으니, 맏이는 신검(神劍) 혹은 견성(甄成)이라고도 한다., 둘째는 태사(太師) 겸뇌(謙腦), 셋째는 좌승(佐承) 용술(龍述), 넷째는 태사(太師) 총지(聰智), 다섯째는 대아간(大阿干) 종우(宗祐), 여섯째는 이름을 알 수 없고, 일곱째는 좌승(佐承) 위흥(位興), 여덟째는 태사(太師) 청구(靑丘)이며, 딸 하나는 국대부인(國大夫人)이니 모두 상원부인(上院夫人)의 소생이다”
삼국유사 제2기이 후백제 견훤

견훤의 부인으로, 이제가기에 의하면 견훤의 자식은 모두 9남 1녀인데 상원부인의 소생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견훤의 왕비에 대한 언급은 이제가기에서 간략하게 언급한게 끝.

여담이지만 고려에 볼모로 보내졌다가 사망한 견훤의 외조카인 진호(? ~ 926년)가 이 사람의 형제일 가능성이 있는데,[1] 견훤의 누이인 대주도금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다.

4. 대중 매체에서


[1] 외생(外甥)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보통 처의 형제나 여동생이 낳은 아들로 파악되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