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동 올림픽 (1988) 上溪洞 올림픽 | Sanggye-dong Olympi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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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000><colcolor=#000,#fff> 장르 | 다큐멘터리 |
감독 | 김동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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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8 서울 올림픽으로 인해 서울 도봉구[1] 상계동에서 발생한 철거와 강제이주로 인해 집을 잃은 철거민들의 삶과 투쟁을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 대한민국 최초의 장편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로 여겨진다. [2] 푸른영상 제작. 김동원 감독.
2. 줄거리
1988년, 1988 서울 올림픽의 개최로 인해 대한민국은 열광하였다. 하지만 정부는 서울 안의 판잣집과 달동네가 올림픽을 위해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기에 너무 볼품없다는 이유로, 서울 내에서만 200여곳에 달하는 달동네를 강제철거하고 철거민들을 강제로 서울 외곽등으로 이주시키는 도시개발 계획을 실행한다. 그 타겟중 하나로 지목된 상계동에 살고 있던 200여 철거민 가구를 철거하고 강제이주를 시키려 한다. 여기에 맞서서 거주민들은 열심히 싸우지만, 공권력과 싸우기에는 무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계동의 철거민들은 좌절하지만은 않는다. 이들은 웃음을 잃지 않으며 투쟁을 계속해 나간다. 상계동에서의 철거 반대 투쟁, 명동성당에서의 농성, 부천 고강동으로의 이주, 이주한 곳에서 공무원과 용역깡패들의 공격 등을 거치면서도 철거민들은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이들은 결국은 집을 잃고 땅굴을 파서 살아가야 하는 처지에 직면하지만 그래도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3. 여담
- 애석하게도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의 국제대회를 명목으로 한 이런 강제적 재개발은 1988 서울 올림픽뿐만이 아니라, 그 이전의 개최국들도 그랬고 이후의 대회들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서울 올림픽 때 강제철거로 이주당한 철거민이 추산 100만명에 이르며, 2008 베이징 올림픽이 준비되는 순간 수많은 후통(胡同)[3]이 재개발 명목으로 사라졌고, 125만명 가량의 주민들이 강제이주당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도 이스트런던 재개발로 인해 많은 저소득층 거주민들이 터전을 잃었고, 2014 브라질 월드컵과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연속 개최한 브라질은 파벨라를 재개발하면서 수십만 빈민층들을 강제로 내쫓은 자리에 고급 아파트ㆍ쇼핑센터ㆍ골프장 등을 세웠으며, 2020 도쿄 올림픽에서도 유동인구가 많은 시내의 노숙자들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쫓아냈다.
- 이 영화는 약 30년 후에 나온 다큐멘터리 영화인 내 친구 정일우와도 연관이 크다. 1988년 상계동 달동네 철거 당시 때 철거민들과 함께 생활했던 사람이 정일우 신부였던 것. <내 친구 정일우>에서도 정일우 신부가 1988년 상계동 달동네 철거 사건 당시 공무원 및 용역깡패들에게 항변하는 장면이 나온다.
- 이 사건 이후로 나오게 된 것이 바로 ‘복음자리 딸기잼’으로, 철거민들 중 광명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정일우 신부 및 지역 수녀들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시작이다. 복음자리 마을은 주로 영등포와 목동 철거민들이 이주한 곳이다. 복음자리 마을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정일우 신부 외에도 제정구가 있다. 현재 복음자리는 대상그룹이 인수, 따로 법인화되어서 잼류를 만들어 팔고 있다.
- 1988년 대대적 철거 이후에도 노원구 지역의 몇몇 달동네 지역은 2010년대까지도 남아있었다. 그 중 2곳이 녹천마을[4]과 백사마을[5]이 그곳. 그러나 녹천마을은 2015년 다 철거되고 현재는 초안산 관통도로 + 초안산 캠핑장으로 조성되었으며, 백사마을도 2018년을 끝으로 없어진다. 일반적인 아파트를 짓거나 하는 재개발을 하는 것은 아니고, 서울시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서 저층형 테라스식 주택 + 20층 내외 중충 아파트 + 상가지역을 혼합한 주거단지로 개발할 예정. # 이를 위해 서울특별시, 노원구청, 서울시립대학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등에서 다양한 형태의 주거단지 개발방법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
- KBS에서 제작한 1988 서울 올림픽 30주년 다큐멘터리 88/18에서 많이 인용되며, <상계동 올림픽>을 연출한 김동원 감독 본인과도 인터뷰한다.
- 1989년 제39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포럼부문, 1991년 제2회 야마가타 국제영화제 초청작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