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1-05 19:09:17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사고 이전


1. 개관2. 상세
2.1. 어마어마한 규모와 화려했던 이미지2.2. 부지 용도2.3. 부실 공사2.4. 부실 관리
2.4.1. 붕괴의 치명타가 된 에어컨

1. 개관

삼풍건설그룹의 회장 이준은 60년대 중앙정보부의 인맥으로 강남 서초구의 군용지를 불하받았다. 이 땅은 70~80년대 강남개발열풍에 급격히 발전하고 이준은 그동안 건설로 많은 돈을 벌었다. 이때 지은 건축물 중 하나가 바로 그 유명한 여의도순복음교회이다. 이준은 그동안 모은 자금을 바탕으로 1980년대 후반 서초구 외인주택단지를 철거한 부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인 삼풍아파트를 건설하고 아파트 단지 내 근린상업지구 개념으로 삼풍백화점도 함께 건설하게 된다. 하지만 후술하다시피 단순 근린상업지구라고 하기에는 그 규모가 역대급.

2. 상세

2.1. 어마어마한 규모와 화려했던 이미지

파일:attachment/sampoong10.jpg


이 광고 23초쯤에 나오는 여자어린이는 배우 김민정이다.

1990년 당시의 광고(CF)에 쓰인 음악은 존 윌리엄스의 " 올림픽 정신(The Olympic Spirit)" 으로 1988 서울 올림픽의 주제곡으로 쓰였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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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은 1987년 5월 착공하여 1989년 12월 개장했는데 당시 전국 2위 규모의 단일매장이었다.[1][2] 하얀색 바탕의 기존 백화점 건물 디자인을 탈피하여 외형 색상을 분홍색으로 채택했고[3] 콘크리트와 유리의 조화로 당시에는 엄청나게 파격적인 디자인이었다. 게다가 초호화 쇼핑몰의 컨셉으로 출발한 삼풍백화점은 지금 기준으로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각종 명품 브랜드들을 대거 입점시켜 1980년대 신흥 부촌으로 떠오르던 강남구, 서초구 지역 고객들을 쓸어모으게 된다. 이게 어떤 수준이었냐 하면 현재의 압구정 현대백화점 본점이나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조차 당시의 삼풍백화점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고 한다.[4]

삼풍백화점은 이런 어마어마한 규모의 매장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게 된다. 중앙홀 4층에 있던 아트홀은 서울시내 유명 공연장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서태지와 아이들이 이곳에서 데뷔하기도 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MBC 라디오국에서 주관한 연례 행사였던 '예쁜엽서전'을 치르기도 했다. 또 인테리어 또한 당시로서는 고급스러웠었다. 또 수입품과 사치품을 많이 판매했는데, 이 때문에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5] 그 유명한 페라가모를 직수입해 판매하기도 했으며,[6] 이외에도 다양한 직수입브랜드들을 들여왔다. 물론 이 브랜드들은 붕괴 이후 국내를 떠난 경우가 많다. 또 B동에 수영장같은 문화공간을 만들어 손님들을 끌어모으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영국 문화전과 이태리 문화전같은 행사를 통해 해외 문화 및 브랜드들을 소개하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붕괴 당시에는 프랑스 문화전을 준비 중이기도 했다. 그리고 94년에는 탤런트 최명길을 모델로 대대적인 광고에 나서기도 했으며[7], 영국에서 욕실용품브랜드인 넥타, 이태리에서 의류브랜드인 마리나리날디를 직수입해 별도의 매장을 직접 운영하는 사업을 시작했으며, 생활용품 전문점인 아프레미디를 자체론칭해 백화점과 압구정동에 매장을 열기도 했다.[8]

당시 층별구성을 보면, 1층에는 로비와 수입품매장, 화장품 매장이 있었는데, 삼풍이 당시 수입브랜드 유치에 의욕적이었던지라[9] 일반인들은 이름도 못들어봤을 브랜드들로 가득했다고 한다. 로비는 많은 사람들이 중앙홀이라고 불리던 공간에 있었는데, 정문쪽에는 분수대가, 중앙에는 부가티 EB110이 있었고, 연결통로와 행사매장이 위치해있었다고 한다. 2층에는 여성복 매장이 있었는데 비싼 고급 디자이너 브랜드들과 메이저급 브랜드만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이름 날리던 디자이너들은 왠만하면 이곳에 매장을 냈었다고 한다. 3층은 남성복과 캐주얼, 스포츠전문점이 있었는데, 이쪽도 예외는 아니었다. 4층가정용품 매장은 더 심했는데 온갖 수입 가구와 장식품, 가전제품을 팔았으며, 심지어는 쓰레기통이나 수세미까지 비싼 수입품을 판매했다고 한다. 완구매장에는 레고 같은 요즘기준으로도 만만치 않은 완구들을 판매했었다고 한다. 5층에는 고급 식당들이 즐비했는데, 당시 방문해본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콩나물국밥집이 유명했었다고 한다.[10] 당시 이태리 음식점에서 근무했던 사람에 따르면, 인기 연예인이나 아나운서들도 자주 볼수 있었다고 한다. 지하 식품관도 비싼 식품들을 많이 팔았는데, 당시 국내에서 고급 식품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점을 고려하면, 부유층이 많이 다녔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물론 B동쪽 슈퍼마켓은 논외.지하에는 웬디스 햄버거 매장이 유명했다고 한다.

또한 대중적인 이미지였던 뉴코아를 제외하면[11] 서초동에서 거의 유일한 고급백화점이었기 때문에 주변에 거주하던 부자들은 자주 들르는 장소였다. 당시 스포츠센터 회원은 백화점 회원으로 자동 등록 할수있게 되어 있었는데, 붕괴 이후 스포츠센터 회원 명단을 보니, 이름대면 누구나 알만한 고위층들의 이름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다만, 이러한 고급화 전략과 단일매장 전략 때문에 타 백화점보다는 매출이 부진했고 유동인구를 제대로 흡수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원래는 수도권과 지방에도 지점을 추가로 내려고 했으나, 사업과정에서 난관이 많아서 착수 기한을 미룬 상태였다.[12][13] 추가 지점 냈으면 거기도 부실공사했을 거다. 물론 이용객을 타 백화점과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지, 파리 날리는 백화점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당시에 돗대기 시장마냥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롯데나 뉴코아랑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백화점에서 세일이나 경품행사를 하면 주변 교통이 마비되던 시절이다. 교통문제 때문에 세일행사시 대중교통 이용 권장 문구를 광고에 넣도록 하고, 지하철 승차권을 나누어주는 행사를 했어야 할 정도. 역설적으로 삼풍이 차라리 파리 날리는 백화점이었다면 이정도로 인명피해가 심각해지진 않았겠지만...

이렇게 크고 파격적인 외관을 갖고 있었던 삼풍백화점은 사실 최악의 부실 건물이였고 훗날 붕괴 이후, 외국의 건축 전문가들은 이따위로 지어놓고도 5년 반이나 버텼다는 사실에 놀라워 했다. 원래대로라면 1년 안에 무너져도 결코 놀라울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 후술할 무량판 구조 공법의 강점 때문에 그나마 버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

2.2. 부지 용도

파일:삼풍 백화점 실제 사진.jpg

사고 원인에 앞서 설명할 것은 삼풍백화점 시공 계획이 세워지기 전 본래 이 부지는 주거용이었다는 사실이다. 본래 삼풍백화점이 들어선 부지는 삼풍건설산업에서 지었던 외인 주택 단지의 일부였고 주거용 건물만 세울 수 있는, 다시 말해서 삼풍백화점은 본래 그 자리에 지어질 수 없는 건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삼풍 측은 이 외인 단지를 허물고 삼풍아파트와 함께 백화점을 짓기 위해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고 부지 용도를 변경하여 공사를 하게 되었다. 때문에 바로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매우 가까운 거리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있었고 까딱 잘못되면 아파트의 연쇄 붕괴로 인하여 수십 배의 사상자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부지 용도 비리를 두고 붕괴 직후에는(부실공사가 붕괴 원인임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에는) 허약한 지반 때문에 건물이 붕괴된 것이라는 견해도 있었다.[14] 비록 삼풍백화점의 붕괴 원인은 지반이 아니었지만, 삼풍백화점이 건설 시작부터 철저하게 비리의 온상인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3. 부실 공사

파일:attachment/삼풍백화점 붕괴사고/Sampoong.jpg

위 설계도는 진짜 건설되었어야 했었던 설계도로, 1987년 우원건축사무소가 설계한 것이다. 이렇게만 성실하게 지어줬어도 삼풍백화점은 비록 비리로 받은 더러운 돈으로 지어졌을지언정 지금까지 건재했을 것이다. 물론 저대로 안 짓고 이곳저곳에서 푼돈 몇 십만원 아끼다가 다 무너졌으니 이제와서 의미는 없다.

원래 삼풍백화점은 '삼풍랜드'라는 이름으로[15] 바로 옆에 있던 삼풍아파트 주민들을 위한 대단지 종합상가[16]로 설계되어 우성건설[17]에서 시공을 맡는 것으로 최초 발주가 되어 공사가 진행되었다. 거의 완공에 가까워질 무렵 건축주인 이준 회장은 건물 용도를 백화점으로 변경하고 시공사에 원래 4층이었던 설계에 1층을 더 얹어 도합 5층으로 건물을 시공할 것을 요구했지만, 시공사인 우성건설 측은 붕괴 위험성을 이유로 증축을 거부했고[18], 결국 이준 회장은 우성건설과의 시공 계약을 중도 파기시키고는 자사 계열사인 삼풍건설산업이 시공을 이어가게끔 한다. 사실 백화점과 같은 복합 건물은 설계 변경 시에 구조 전문가의 검토가 필수적이나[19] 이준 회장이 수익을 위하여 건물의 안전성을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구조 설계를 변경한 게 문제였다. 아무리 멍청하더라도 관련 분야의 전문가가 하자는 대로 했으면 이런 사고는 절대 발생하지 않았다. 정말 "나는 미치도록 층수를 올리고 싶다! 무조건 층수를 올리고야 말겠다!"라는 심산이었으면 아예 깨끗하게 다 헐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지었어야 했다. 후술하겠지만 이 구조의 건물은 절대 고층으로 지을 수가 없다. 즉, 고층을 견딜 수 없는 구조다.
무량판 설계도 무량판 종류 적절히 시공된 무량판 그리고... 삼풍백화점의 상황
파일:external/img02.bibliocad.com/flatslabdetail_68977.gif 파일:external/www.scielo.br/en_a04fig01.jpg 파일:external/civildigital.com/flat-slab-construction-with-drop-panel-and-column-head.jpg 파일:external/psoutowood.files.wordpress.com/6a01101627f77c860c01240bb03509860e.jpg
무량판에 대한 좀더 자세한 내용

게다가 건설 자체도 막장이었다. 삼풍백화점은 무량판(Flat-Slab) 구조로 대들보가 없이 바닥이 직접 기둥으로 하중을 전달하는 구조로 설계되었는데, 설계 상으로는 기둥과 위층 바닥 사이에 하중 전달을 보조하는 지판이 하나 더 설치되어 바닥 철근과 기둥 철근이 잘 연결되도록 했으나 실제로는 지판 두께도 충분하지 않았으며, 일부 기둥은 지판 자체가 없어서 바닥과 기둥의 철근 연결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거기에 무량판 구조 또한 원래는 바닥 끝쪽 철근도 "ㄱ자"로 꺾여 있는 형태로 시공해서 건물 상판의 침하로 인한 연쇄 붕괴가 일어날 경우 이 철근의 끝부분이 일종의 갈고리 역할을 하여 기둥이나 내력벽에 교차해 있는 다른 철근을 잡아채어 버티는 것으로 건물의 연쇄 붕괴를 차단하거나, 적어도 붕괴 속도를 늦추는 제동장치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삼풍백화점은 그런 것도 전혀 없었으며 백화점이 붕괴할 당시 마치 발파 방법으로 철거될 때처럼 아무런 제동 없이 순식간에 무너졌던 것도 바로 이 철근의 끝부분을 ㄱ자로 꺾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큐에 나온 교수가 실험을 통해 이 지판의 역할을 잘 보여준다. 나무 젓가락 여러 개를 세운 뒤 그 젓가락 위에 둥근 종이 스티커를 붙이고, 위에 또 얇은 알루미늄 호일을 바닥으로 만든 층을 하나 얹은 뒤 위층에 물을 부어 하중을 가하는 실험이다. 여기서 나무 젓가락이 기둥, 종이 스티커가 지판 역할을 하는데, 물을 꽤 많이 부어도 호일 바닥이 뚫리지 않는다. 심지어 기둥을 하나 제거해도 잘 버틴다. 그러나 종이 스티커를 제거한 뒤에 물을 부었을 때는 가차없이 바닥이 뚫린다.

이것도 모자라서 삼풍백화점은 몇몇 기둥들을 제거했으며 남은 기둥들의 지름을 25% 정도 깎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본래 1987년 우원건축사무소(당시 대표이사 문정일)가 설계한 삼풍백화점 설계도에는 기둥이 32인치였으나 건축은 23인치로 이루어졌다.[20][21] 또한 에스컬레이터에 방화벽을 설치하기 위해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부분은 기둥의 4분의 1을 아예 잘랐다!

또한 삼풍백화점은 준공검사도 무시하고 가사용 승인만으로 개점하였다. 즉 개점일이었던 1989년 12월 1일에도 법적으로는 아직 완공되지 않은 건물이었다는 뜻이다! 준공 승인을 받기 전까지는 개점할 수 없는 것이 원칙임에도 삼풍그룹은 이를 과감히 무시했다. 심지어 4층과 5층은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고, 이 층들은 90년 봄 새 단장을 맞아 오픈하게 된다. 삼풍백화점이 정식으로 준공 승인을 받은 것은 개점 9개월이 지난 1990년 8월의 일이었다. 거기다가 붕괴 8개월 전인 1994년 10월에는 기초 부분인 지하 1층에 구조 변경 공사를 했고 다음 달인 11월에는 위법 건축물 판정을 받았다.

건축 용도와 다른 용도의 철근을 사용하여 결과적으로 건물의 붕괴 속도가 가속화되어 버리는 등 당시 부의 대명사였던 삼풍백화점은 실상 옹졸한 아낌과 계산 착오로 뒤범벅이 된 건축물이었다. 이쯤되면 전문가들이 말하듯 무너진 게 이상한 것이 아니라 무려 6년을 버틴 것 자체가 오히려 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2.4. 부실 관리

그 후 삼풍백화점 운영진은 백화점 운영업자라기보다는 '건물 철거업자'에 가까웠다. 그냥 6년간 조금씩 철거되고 있었다고 하는게 맞다. 보강을 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내구도를 깎아내리고 있었으니 이런 참사는 예고된 것이었다.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인터뷰한 당시 청소부의 증언에 따르면 휴점일에도 매장을 재배치하고 공사를 하느라 쉬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삼풍백화점 층별 시설도 출처
A동 (백화점) 중앙광장, 아트홀(4,5층) B동 (근린시설)
옥상 옥상
5층 전문식당가 5층 삼풍스포츠맥스, 수영장, 사우나, 이발소
4층 문화, 가정용품, 혼수용품 4층 삼풍스포츠맥스
3층 남성의류, 캐주얼, 스포츠 3층 문화센터, 갤러리, 업무시설, 상가
2층 여성의류 2층 업무시설 (증권사), 상가
1층 잡화, 해외수입브랜드, 화장품 1층 업무시설 (은행), 약국, 상가
지하 1층 슈퍼마켓, 식품관, 주방용품, 유아용품, 서점(B동)
지하 2층 지하주차장, 창고
지하 3층 지하주차장, 직원식당, 미화원 대기실
지하 4층 기계실

부실공사도 문제였지만, 건물의 상가 배치는 그보다 더 심각했다. 말 그대로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문제였다.

당장 불법 증축으로 추가된 5층에 처음에는 비교적 바닥 하중이 가벼운 롤러스케이트장을 설치하려 했으나, 경영진들이 이런 건 백화점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 다시 생각을 바꿔 롤러스케이트장 대신 대형 음식점을 유치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정부 기관의 승인도 받지 않고 시행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불법이었다. 식당가 특성상 무게 괴물인 냉장고는 필수이며 무거운 주방 기기들과 세라믹 식기들을 항상 잔뜩 쌓아두고 책걸상까지 들여놓는 등 하중의 부담이 상당히 높아 매우 위험한 지경이었는데, 거기에 덧붙여 '한국은 오래 앉아서 밥을 먹기 때문에 바닥에 온돌[22]을 설치해야 한다'는 거지같은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온돌 난방 시설까지 설치하게 되었다. 참고로 이런 방식으로 식당가 설계를 할 경우 난방 장치의 중량만 해도 건물 3층 정도를 쌓는 정도의 엄청난 하중[23]이 가해지기 때문에 오늘날의 백화점에는 한식당이라고 해도 난방 장치는 설치하지 않거나 전기판넬을 설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백화점 푸드코트들이 대부분 지하에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24] 최근에는 공법과 설계기준의 상향평준화와 동선분석의 변화로 푸드코트를 지하에, 고급식당가를 최고층에 놓고 있다. 하지만 최근 백화점들은 온돌을 설치하지 않고 부득이한경우에만 전기난방을 하며, 한식당 역시 모두 의자와 테이블을 사용하도록 바뀌었다.

게다가 여기에 건물 붕괴를 더욱 가속화시킨 사업이 또 있었다. 붕괴하기 약 1년 전인 1994년 1월, 삼풍백화점은 2층에 '삼풍문고' 라는 이름의 서점을 들여놓았다. 당연히 책들은 무게가 상당히 나간다.[25] 이듬해 3월 서점은 철수하기에 이르나 가뜩이나 약했던 건물의 하중을 지지하던 구조물들에 가해진 엄청난 권수의 책의 무게는 건물의 붕괴를 앞당겼을 것이다.[26] 참고로 정부대전청사는 4동에 대해서는 특별히 강도를 높여 설계했는데, 특허청의 서류 양이 방대해서 이를 보관하기 위한 목적이라 한다. 책이나 서류를 한꺼번에 많이 보관함은 건축설계에서도 특별해 고려해야 할 요소임을 방증한다.[27]

당시 무너지지 않은 B동의 경우는 상황이 좀 달랐다.[28] 5층에 수영장[29]이 있긴 했지만 그 대신 하술할 치명적인 붕괴 원인 중 하나인 에어컨 냉각탑이 옥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B동은 A동에 비하면 시공이 그나마 제대로 돼 있는 편이었는데 A동은 자재비를 아끼기 위해, 무엇보다 점포를 더 많이 욱여넣기 위해 기둥을 깍아내고 줄이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지만 사무실 및 레포츠 센터로 계획된 B동은 이럴 필요가 없었고, 무량판 시공의 이점으로 인해 무너지지 않은 것이다. 물론 이런 B동 역시 붕괴 위험성을 들어 반년 뒤인 95년 12월 경에 철거가 결정되었고, 관련기사 99년 초에 완전히 철거되었다.
이렇게 보면 B동 고층 수영장의 존재는 A동 붕괴와 별개이지만 당시 내막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고층 수영장을 붕괴 원인으로 의심하는 경우도 있었고, 과민하게 대응할만한 이유가 되기도 했기 때문에 삼풍백화점 붕괴 이후 옥상에 있던 수영장을 모조리 밑으로 내려보내거나 아예 없애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IMF 직전인 1996년경에 문을 닫은 수영장이라면 100%.

실제로도 이 사고 이후 만들어지는 대한민국의 모든 백화점들은 물론, 대다수 상가건물에서 푸드코트나 서점 등 하중이 무겁게 실릴 만한 시설들은 모조리 지하에 설치한다.[30] 2017년 현재 시점에서도 상대적으로 고급인 식당들이 상층부에 올라가는 경우는 있어도 푸드코트가 고층으로 올라가는 일은 없다. 흔히 볼 수 있는 배치는 아예 몽땅 지하에 있거나, 지하에 푸드코트, 최상층부에 고급 식당가. 이런 식이다. 물론 거의 예외 없이 이 상층부의 식당들은 들여다보면 식탁과 의자로만 배치하였다.

2.4.1. 붕괴의 치명타가 된 에어컨

가뜩이나 약해진 삼풍백화점 건물에 치명상을 입힌것은 에어컨 냉각탑으로, 삼풍백화점은 에어컨 냉각탑이 3대 있었는데, 이 냉각탑 3개의 자체 무게만 해도 36톤에 냉각수까지 채우면 무려 87톤에 달하는 엄청나게 무거운 물건으로 옥상이 견뎌낼 수 있는 하중의 4배가 넘는 무게였고, 때문에 개장 초기부터 미세한 진동과 물이 새는 현상이 벌어졌다. 그리고 여기에 치명타를 가한 것이 냉각탑의 이동으로, 처음에 냉각탑은 삼풍백화점 옥상 동쪽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 냉각탑이 가동된다면 소음이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바로 옆에 있던 삼풍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고, 이에 경영진들은 89년 12월부터 90년 정식 개장 전까지 이 냉각탑들을 반대편 우면로 측으로 옮겼다. 설계 변경으로 하중을 한참 넘기던 상황에서 이 냉각탑은 삼풍백화점의 치명타가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 냉각탑은 사실상 삼풍백화점 붕괴의 결정적인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파일:attachment/rooftop-weight1.jpg 파일:attachment/rooftop-weight3.jpg 파일:attachment/rooftop-weight2.jpg

거기에 이준 일당이 냉각탑을 옮긴 방법도 문제였다. 이런 무거운 물건은 대형 크레인을 사용하여 공중으로 들어서 옮기는 것이 정상이었으나, 삼풍 경영진들은 돈이 아까워서 냉각탑 아래에 롤러를 장착하여 옥상 상판 위에서 천천히 끌어가며 반대쪽으로 옮기는 되도 않는 행위를 저지르고야 말았다. 결국 대당 12톤이나 되는 그 무거운 걸 이동하는 동안 옥상 바닥과 지지 구조물에 엄청난 부담이 가해졌고 건물 붕괴의 단초 부분이었던 5E 지주 부분에 견디지 못할 하중이 가해졌다.(위 첫, 두 번째 사진) 특히 이동 후에 계속 작동되는 에어컨 실외기의 진동은 불안정한 옥상을 비롯한 5층 구조물에 그대로 전달되어 이들이 견딜 수 있는 한계점을 초과하기 시작했다.(위 세번째 사진)

한 마디로 옥상에 균열을 쫙 깔아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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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위는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이었다. 이 롯데 본점의 규모는 90년대 초반 규모 측정 당시 구관 바로 옆에 새 건물로 지어진 신관이 구관과 내부까지 완전히 이어 붙여진 상태에서 파악한 규모다. 따라서 별도의 증축이나 확장 없이 단일매장 규모로서는 삼풍백화점이 1위였던 셈이다. [2] 삼풍백화점의 연면적은 73,877㎡, 롯데월드몰 연면적은 428,934㎡으로 롯데월드몰이 훨씬 크다. [3] 오픈 당시에는 위 사진처럼 하얀색으로 도색했다가 중간에 분홍색으로 바꿨다. [4] 당시에 갤러리아는 사실 지금의 명품관이미지가 아닌, 강남 오렌지족과 신세대를 위한 백화점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고가의 물건을 많이 판매한건 사실이다. 하지만 넓고 세련된 매장과 수입브랜드를 두루 갖춘 삼풍에는 밀렸다. [5] 심지어 로비에 부가티 EB 110이 전시된 적도 있었다. 이 차량은 부가티 베이론의 아버지뻘 되는 차량이다. 이 어마무시한 차를 수입할 정도니까.....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현재 하남 스타필드 로비에 전시되어 있는 메르세데스-AMG 프로젝트 원을 생각하면 쉽게 상상이 갈 것이다. [6] 아예 94년부터는 삼풍에서 브랜드를 직접 운영했었다.그리고 붕괴이후에 페라가모코리아가 설립되었다. [7] 이 때문에 붕괴 당시 놀란 사람들이 많았다. [8] 해외에서 생산된 생활용품을 수입업체를 통해 수입해와 아프레미디 상표를 붙여서 파는 방식이었다. [9] 수입업체와 독점계약을 맺었을 정도. [10] 응답하라 1994에서는 냉면집이 언급되지만, 당시에는 냉면이 그랜드가 더 유명했었다고 한다. [11] 당시 뉴코아는 가격파괴를 캐치프레이즈로 사실상 내새울 만큼 싼값의 국산제품을 많이 판매 했었다. 말이 백화점이지 지금의 마트나 아울렛정도의 이미지였다고 생각하면된다. [12] 그러나 아무리 부진한 경영 성과를 보였다고 해도 일단 타 계열 프랜차이즈 백화점들 사이에서 버젓하게 자리를 잡고 살아있었다는 것 자체가 이 백화점의 경쟁력이 장난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었다. 만일 붕괴되지 않았으면 IMF 외환위기에 따른 도산 위기도 자력으로 극복하고 그 이후에 부도가 난 지방 백화점의 건물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추가 지점을 냈을 가능성이 높다. [13] 또한 붕괴이후 들어온 억대급 어음들도 다 결제해냈을 만큼 삼풍그룹 자체의 재정도 안정적인편이었다. 일단 삼풍그룹이 소유하고 있던 부동산만 봐도.. [14] 실제로 와우아파트 붕괴사고에서도 나오듯 약한 지반이 계속적으로 무게를 지탱하면 결국 무너지게 되어있다. 물론 그 전에 부실공사도 한 몫 했지만. [15] 1988년 당시 삼풍랜드 말고 신문 광고에 삼풍쇼핑이라는 이름으로 광고를 낸 바가 있는데 신문 광고에 냈던 건물 샘플은 이 문단의 첫 번째 자료 사진으로 나와 있다. [16] 대단지 종합상가의 크기나 개념을 쉽게 알기 어려운 위키러를 위해 첨언하자면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있는 종합상가를 생각하면 쉽다. 은마아파트의 종합상가는 크기는 백화점보다는 작지만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로 되어있으며 A데크와 B데크로 나뉘어 운영할 정도로 크다. 게다가 옆의 하이마트 본점 및 본사보다 부지도 더 넓다. [17] 다만 우성건설도 삼풍백화점 붕괴 이후로 같이 망하기는 했다. 사실 근본적인 원인은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신도시 건설로 일감이 크게 늘어나면서 무분별하게 사업확장을 했다가 콘도와 백화점 사업이 별로 수익을 거두지 못한데다가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에 들어가면서 미분양 물량이 쌓여서 이를 감당하지 못한 것이지만 삼풍시공 사실이 알려진것이 이미지에 타격이 가해진건 사실이었다. [18] 당연하지만 이런 경우 지하로 내야 한다. [19] 알다시피 백화점이라면 일반 가게나 슈퍼마켓과는 다르게 서점, 가전제품, 가구 등 적게는 수천 킬로그램에서 많게는 수백 톤의 무게가 나가는 물건들을 진열하기 때문에 증축할 때는 당연히 안전을 확인해야 하며, 한다고 해도 고층에는 무거운 짐을 올리지 못하게 하도록 되어 있다.(그래서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식당가가 거의 대부분 지하에 있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렇지 않은 건물들은 아래설명처럼 그걸 염두에 두고 더욱 보강을 해서 짓는다 그러나 이를 아예 무시하고 5층에 물을 이용한 온돌이 돌아가는 식당가를 지었다. 물의 경우 무게가 많이 나가는 편인데, 거기다가 무거운 냉장고와 가스 시설에 물을 이용한 보일러까지 올렸다. 한 마디로 나무 젓가락 위에 수백 킬로 짜리의 물건을 올린 셈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수많은 전문가들이 이를 보고 무너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1년 이상을 버텨온 게 용하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20] 이는 공사 관계자가 공사 비용을 착복하기 위해 자재를 줄였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21] 말이 25%지, 원의 단면적은 반지름의 제곱에 비례한다. 즉 실제로는 기존 설계와 비교해서 0.75의 제곱인 고작 56.25% 정도의 하중 밖에 버틸 수 없게 된 것이다! [22] 한국인들은 '온돌'하면 돌을 깔아넣는 전통 방식만 생각하지만 흔히 '보일러'라고 부르는 바닥 아래에 깔린 호스로 뜨거운 물을 흘려보내 바닥을 덥히는 난방장치가 바로 온돌의 직계후손이다. 바리에이션으로 물 대신 전기 열선을 이용한 전기 온돌도 있고, 이는 무게가 훨씬 가볍고 설비도 간단한 편이지만 이게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2000년대 이후이다. [23] 물 때문에 하중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24] 1990년대 초반까지는 백화점 고층에 식당가(푸드코트)가 위치하는 게 흔했다. 지하 1층 식품매장, 1~4층 매장, 5층 식당가 형태가 보편적이었으나 삼풍 사고 이후에 모두 바뀐 것. [25] 특히 한국 책들은 더 하얗게 하려고 종이에다 돌가루를 많이 넣고 표지도 두꺼운 골판지를 사용해서 외국 책보다 훨씬 더 무겁다. 오죽하면 이삿짐 센터에서는 책을 벽돌이라고 부른다. 게다가 책을 꽂을 서가의 무게도 고려해야 하는데 이 또한 만만치 않다. [26] 2009년 정해진 구조 설계 기준에 따르면 백화점 2층 이상의 설계 하중은 단위 면적당 400 kg, 서고는 750 kg이다. 용도변경으로 인한 실하중이 초과될 경우 반드시 진단 및 구조검토를 거치고 보강 등 조치를 해야 한다. [27] 따라서 지금도 대형 서점은 대부분 건물 지하층이나 1층에 위치한다. NC웨이브 전주점이 그 예인데, 지하에 문구점인 핫트랙스와 교보문고가 있다. 교보문고는 애초에 지하에 위치한다. 물론 층수가 높은 곳에 서점이 입점한 건물도 꽤 많지만, 이런 백화점들은 당연히 관련 규정을 철저히 지켜서 건축하였다. 각급 도서관들이 수시로 도서 정리 작업을 하는 것 역시 하중 유지를 위해서이다. [28] 당시 A동 건물이 이상해서 B동으로 간 사람도 있었고 붕괴 당시 B동으로 대피한 사람도 있었다. [29] 수영장은 물이 몇십톤 단위로 들락날락하기 때문에 무게가 많이 나간다. [30] 서점이 지상에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은 상가배치상 순위가 밀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런 경우에도 충분히 건물을 보강한 후에 입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