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23 04:34:37

삼대(동음이의어)


1. 개요2. 한자어
2.1. 三代
2.1.1. 소설 삼대
2.2. 三大
3. 지역
3.1. 三臺, 중국의 3개의 대(臺)3.2. 삼육대학교의 준말

1. 개요

동음이의어 삼대 목록을 정리한 문서.

모두 숫자 3과 관련되며 소설 삼대, 삼육대학교를 제외하면 '3대'라고도 적는다.

'3대'라는 표기는 ' 세 대'라고도 읽을 수 있다. 수 분류사 '대'는 순우리말 수사를 쓰기 때문이다. 가령 '자동차 3대'는 '자동차 세 대'로 읽는다. 종종 ' 대'라고도 한다. 다만 '세 대'로 읽는 이 '3대'는 개별 단어로서의 쓰임이 없다.

2. 한자어

2.1. 三代

아버지-아들-손자의 세 대를 뜻하는 말. 삼세(三世)라고도 한다.

일반적인 핵가족은 부모-자식의 2대가 같이 사는 것이 보통이고, 3대가 같이 사는 것은 대가족으로 본다. 근대 이전에는 이주 노동이 흔치 않아 (주로 남자 쪽 집안에)[1] 3대 이상이 같이 사는 형태의 대가족이 일반적이었으나 현대에는 핵가족(2대) 혹은 독신/ 딩크족(1대)이 대부분이다.

3세대 모두 형제 없이 남자만 한 명씩 있는 경우 '삼대 독자(獨子)'라고 한다. 먼 옛날 3대 독자는 군면제 사유였다.

북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세습을 '삼대 세습'이라고 종종 언급한다.

2.1.1. 소설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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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三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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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가지 큰 것. 2020년대 한국에선 종종 3대 운동의 의미로 '3대 (숫자)' 식으로 쓰곤 한다.

3. 지역

3.1. 三臺, 중국의 3개의 대(臺)

파일:금호대.jpg
업성 삼대 중 유일하게 석축이 남아있는 금봉대 (금호대)
파일:업성 터널.jpg
금봉대 옆의 전군동 유적

위진남북조 하북의 중심 도시 중 하나였던 업성에 세워진 3개의 대(臺). 210-14년에 걸쳐 조조가 세워 업성의 서북쪽 방어 거점이자 일종의 시타델로 삼았다. 전통적으로 삼대는 황제가 세울 수 있는 것이었고, 따라서 조조가 삼대를 세운 것은 황위를 향한 그의 야심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삼국지연의의 영향으로 조조의 사치의 상징이라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무기고이자 거대한 방어 시설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금봉대 바로 아래에는 조조가 비상시의 군대 이동을 위해 만든 지하 터널인 전군동이 남아있다.[2]
  • 동작대 - 210년 건립. 관성대로도 불림.
  • 빙정대 - 213년 동작대 북쪽에 건립
  • 금호대 - 214년 동작대 남쪽에건립

조조가 세운 삼대는 307년 팔왕의 난 당시 파괴되었고, 335년 후조 석호가 업으로 천도하며 과거 삼대를 재건하였다. 이때 조위의 삼대보다 더 화려하게 건설하였고, 기녀들을 불러 사치를 벌였다. 후대에 동작대가 사치의 상징이 된 것은 석호 시절의 기록이 와전된 결과이다.

3.2. 삼육대학교의 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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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육은 '지/덕/체'를 뜻한다.

[1] 남자가 여자 쪽 집안에 들어오는 것을 주로 데릴사위라고 따로 구별하여 불렀다. [2] 이는 조조의 고향인 초현에도 남아있다. 원소의 업이 자신에게 함락되었으니 자신도 언제든 뺏길 수 있다 여겨 방어력 보강에 많은 관심을 쏟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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