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8-24 17:09:01

사티쿨라 전투


삼니움 전쟁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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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3. 전투 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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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343년, 삼니움인들의 영역에 진입한 로마군이 사티쿨라 계곡에서 삼니움인들의 매복 공격을 받았지만 격퇴한 전투.

2. 배경

기원전 4세기 전반, 중부 이탈리아의 아펜니노 산맥 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삼니움인들은 켈트족의 압력을 받으며 점점 남쪽으로 이동하다가 아펜니노 산악지대보다 훨씬 비옥한 캄파니아의 평야지대와 접촉했다. 그들은 이곳을 공략하기로 마음먹고, 캄파니아의 도시국가들을 연이어 공격했다. 이에 캄파니아의 도시국가들은 동맹을 맺고 공동 대응했지만, 삼니움인들의 기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기원전 343년, 삼니움족의 위협에 직면한 카푸아는 로마에 사절을 보내 동맹을 맺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당시 로마는 북방의 에트루리아를 공략하고 켈트족과의 전쟁에 전념하기 위해 삼니움과 동맹을 맺었던 터라 이에 응하려 하지 않았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에 따르면, 카푸아 사절은 동맹을 꺼리는 의원들에게 이렇게 설득했다고 한다.
"오 로마인들이여! 그들이 악한 행위로 우리 땅을 차지하게 두지 말고 오히려 선한 마음으로 그것을 차지하십시오. (중략) 오 로마인들이여, 당신들의 도움의 그림자가 우리를 안전한 편으로 만들기에 충분할 것입니다.(중략) 카푸아는 당신들을 위해 새로운 장정을 제공할 것입니다. 당신들은 우리에게 창립자, 아버지, 불멸의 신이 될 것이며 당신의 어떤 식민도시도 헌신과 충실도에서 우리를 능가할 수 없을 겁니다. (중략) 우리는 로마인의 손에 캄파니아 사람들, 카푸아 시, 신들의 사원, 모든 인간적이고 신적인 권리, 앞으로 짊어져야 할 모든 것을 맡기며 당신의 신민으로서 살아가겠습니다."

카푸아가 복속을 자청하자, 로마는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후 로마에서 파견된 사절단이 삼니움 지도자들에게 카푸아가 자국의 식민도시가 되었으니 더이상 공격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리비우스에 따르면, 삼니움 지도자들은 오만하게 반응했고, 삼니움 군 사령관은 로마 사절이 보는 앞에서 군대에게 즉시 캄파니아 지역을 약탈하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동맹을 맺은 삼니움을 공격한 로마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리비우스의 윤색일 가능성이 높다. 아무튼 양자는 동맹을 끊고 전쟁을 개시했다.

3. 전투 경과

삼니움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원로원은 두 집정관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코르부스 아울루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 아르비나에게 각각 2개 군단을 맡겼다. 발레리우스는 캄파니아로 진격했고, 코르넬리우스는 산니움으로 이동했다. 발레리우스가 가우루스 산 전투에서 격전 끝에 삼니움인들을 격퇴하는 동안, 코르넬리우스는 아펜니노 산맥에 진입해 사티쿨라 계곡으로 내려가는 산길로 군대를 이끌었다. 그러나 그는 삼니움인들이 사티쿨라 계곡 주변 고지에 매복한 채 로마군이 계곡으로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윽고 사티쿨라 계곡에 내려온 로마군은 적이 주변에 매복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그 때는 이미 퇴로가 막혀 있었다. 병사들이 이러다가 꼼짝없이 전멸하겠다는 공포에 질려 있을 때, 트리부누스 밀리툼(Tribunus Militum)인 푸블리우스 데키우스 무스는 삼니움 진영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꼭대기에 적이 없다는 것을 눈치채고 코르넬리우스에게 2,400명 가량의 분견대를 맡겨달라고 요청했다. 코르넬리우스가 허락하자, 그는 이들을 이끌고 언덕을 향해 진격했다. 삼니움인들은 무스의 분견대가 언덕 정상에 거의 도달할 때까지 그들의 움직임을 보지 못하다가 뒤늦게 이 사실을 눈치채고 즉시 언덕을 포위했다. 삼니움인들이 언덕 포위에 신경을 쏟는 사이, 코르넬리우스는 방어에 좀더 유리한 지점으로 군대를 후퇴시켰다.

집정관 코르넬리우스가 빠져나가자, 삼니움인들은 하룻밤을 푹 쉰 뒤 내일 언덕 꼭대기에 있는 로마군을 섬멸하기로 결의했다. 데키무스는 밤중에 켄투리오들과 함께 적진을 정찰한 뒤 병사들을 모아놓고 오늘 밤에 탈출할 생각이며, 가능하면 조용히, 발각되면 무력으로 뚫겠다고 선언했다. 그들은 데키무스의 지휘 아래 숨죽인 채 이동했지만, 적진 중간 지점에 이르렀을 때 발각당했다. 이에 데키우스와 병사들이 요란한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자, 삼니움인들은 혼란에 빠져 달아났다.

다음날 아침 데키우스와 병사들이 무사히 귀환하자, 코르넬리우스는 몹시 기뻐하며 그들을 반겨줬다. 이후 병사들에게 삼니움인들을 공격하라고 명령했고, 전투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던 삼니움인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진영이 점령되었다. 리비우스에 따르면, 숙영지로 도망친 30,000명의 삼니움인들이 전원 사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 학자들은 리비우스가 로마군의 군공을 의도적으로 띄워주기 위해 부풀린 수치로 간주한다.

코르넬리우스는 전투가 끝난 뒤 데키우스에게 황금 목걸이, 황소 100마리, 금박 뿔이 달린 흰 황소 한 마리를 선물했고, 그의 부하들에게 각각 소 한 마리와 속옷 두 벌을 지급했다. 병사들은 데키우스에게 2개의 월계관을 수여했는데, 하나는 군대 전체를 구한 공로로 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하들을 곤경에서 구한 공로로 수여한 것이었다. 데키우스는 마르스에게 경배를 올리는 희생제에 흰 황소를 바쳤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100마리의 황소를 주었다고 한다. 그 후 코르넬리우스는 수에술라 전투에서 삼니움인들을 격파하여 캄파니아에서 몰아낸 발레리우스와 함께 로마로 귀환해 개선식을 거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