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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크스-피코 밀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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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제국주의 열강의 서아시아 분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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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1916년 1917년 1920년
후세인-맥마흔 서한 사이크스-피코 밀약 밸푸어 선언 세브르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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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관련 문서


Sykes–Picot Agreement

1. 개요

파일:sykes-picot.png
사이크스-피코 협정에 따른 중동 분할안

1차 세계대전 중인 1916년 러시아의 동의와 함께 영국, 프랑스간에 맺어진 비밀 협정. 소아시아 협정 (Asia Minor Agreement)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협상국이 승전 후 오스만 제국의 서아시아 영토 분할을 비밀리에 합의한 협정이다. 협상을 맡은 베이루트 주재 프랑스 총영사 샤를 조르주 피코와 영국 정부에서 파견한 중동 전문가 마크 사이크스의 이름을 따서 사이크스-피코 밀약으로 부른다.

본래 영국은 아랍 대봉기를 유도하기 위해 후세인 맥마흔 서한으로 레반트,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통합된 아랍 국가 설립을 약속했으나 결국 프랑스와 일대를 양분하기로 하며 샤리프 후세인의 뒤통수를 쳤다. 밀약의 결과 프랑스가 시리아 및 레바논, 영국이 이라크 및 걸프를 차지하고 유대인 이주가 벌어지고 있는 성지 팔레스타인은 (영국령 하이파 만 외에는) 국제 연맹의 감시 하에 두기로 하였다.[1]

종전 때까지 비밀에 부쳐지기로 했던 밀약은 1년 반 후인 1917년 11월, 10월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을 무너뜨린 볼셰비키 공산당 측이 공개하며 세상에 알려졌다.[2] 샤리프 후세인 등 아랍인들은 분노했지만, 힘의 차이 앞에서 어쩔 수 없었고 시리아 아랍 왕국은 프랑스에 의해 무너지고 만다. 또한 팔레스타인에 아랍 정부가 들어서지 못하게 되며, 벨푸어 선언과 이스라엘 건국에 일조하게 된다. 따라서 아랍인들 사이에서는 벨푸어 선언과 함께 가장 혐오되는 서구 제국주의의 횡포로, 중동판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여겨진다.

2. 관련 문서



[1] 이는 거의 그대로 실행되나 팔레스타인은 사실상 영국 위임통치 하에 놓이게 된다 [2] 막 아랍 봉기군이 시리아를 점령한 직후였다. 서구권에선 맨체스터 가디언의 보도 (영국의 창피, 아랍의 분노, 터키의 미소)로 널리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