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페리 크랜달 Bruce Perry Cranda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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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33년 2월 17일 ([age(1933-02-17)]세) |
미국 워싱턴주 올림피아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
최종 계급 | 미국 육군 대령 |
복무 기간 | 1953~1977 |
학력 |
워싱턴 주립대학교 골드게이트 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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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고등학교 시절 뛰어난 야구선수였고 워싱턴 주립대학교를 졸업하고 학사장교 과정을 통해 공병장교로 임관 후 1년뒤 헬기 조종사 과정을 밟고 항공병과로 전과했다. 도미니카 내전당시 투입된 적이 있다.베트남 전쟁이 발발하고 북베트남군과 맞붙은 첫 번째 정규전인 이아드랑 전투에서 빗발치는 대공 사격에 굴하지 않고 탄약 보급과 부상자 후송, 보충 병력 수송을 위해 누구보다 가장 많은 임무를 수행했다.
의무 후송 헬기가 착륙 지점의 대공사격이 심하여 상공 진입을 못하자 자신의 중대를 따라오라며 의무 후송 비행중대를 착륙 지점으로 유도하지만 적의 사격이 너무 빗발치는 바람에 아군 헬기가 한 대 추락하고, 의무 후송 헬기가 철수하자 자신의 헬기로 부상병들을 다 태울 때까지 착륙 지점에서 대기했다.
첫째 날 비행작전 종료 후 의무 후송 헬기 중대장이 왜 자신의 부하들을 위험한 착륙 지점에 끌고 갔냐며 거칠게 항의하자 권총을 꺼내며 "나한테 따지고 자시고 할 용기는 있으면서 가서 베트콩들 하고 한판 붙어볼 용기는 없냐?!"며 얼굴에 권총을 겨누고 다시 보이면 죽여버리겠다며 분노를 드러냈다.
그는 이 전투에서 적의 포화 속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모두 22회 출격하여 총 70명의 부상자를 후송한 공적으로 명예훈장을 수훈했다.[1] 이후 마셔작전에서도 다수의 적들에게 둘러싸인 12명의 부상자를 성공적으로 후송하기도 했다. 1977년 중령으로 퇴역했고 골드게이트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2010년 명예 대령으로 진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