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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성로 北城路 | Bukseong-r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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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점 | |||
경상북도 경주시 성건동 | |||
종점 | |||
경상북도 경주시 성동동 | |||
연장 | |||
1.4km | |||
관리 | |||
왕복 차로 수 | |||
1~2차로 | |||
주요 경유지 | |||
성건동 ↔ 경주읍성 ↔ 성동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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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상북도 경주시 성건동에서 출발하여 성동동에서 끝나는 도로.2. 상세
경주읍성 등이 인근에 있다. 읍성 복원 등이 진행되고 있으며 에어비엔비 같은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북성로의 경주읍성은 1912년부터 1932년 사이에 대부분 파괴되었다. 특히 초기에 일어난 파괴가 심각했다. 자동차 사용의 보급으로 인한 도로 신설 및 확장이 파괴를 가속화시켰다. 징례문은 1912년에 철거되었다. 그해 11월, 현재의 북성로 일대에서 데라우치 마사타게 조선 총독이 경주를 방문해 석굴암 등 신라 유적을 관람했다.
당시 작금의 북성로 일대는 성문을 통하지 않고서는 차로 성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총독이 차량을 이용해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징례문을 미리 철거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로 인해 읍성을 남북으로 잇는 도로가 개설되었고, 1915년에는 성벽을 관통하는 신작로가 만들어졌다. ‘신작로’는 차량 통행이 가능한 길을 의미한다. 1918년 10월, 대구에서 불국사역까지의 철도가 개통되었는데, 철도 건설에 필요한 많은 석재가 읍성에서 채취되었다.
북성로에 있었던 일제강점기 천년 고도의 상징인 징례문은 완전히 사라졌으며, 현재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2009년 봉황로 정비 사업 중에도 징례문 터에서는 아무런 석재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주시는 2002년부터 경주읍성 복원사업을 진행해왔으며, 지금까지 약 160억 원을 들여 1만2000여 m²의 토지를 매입하고 56채의 가옥을 철거한 뒤, 2004년에 성채와 치성 1개소를 복원했다. 총 437억 원을 투입하여 2030년까지 전체 성곽 2.4km 중 동·북쪽 성곽 1025m를 연결하고, 그 사이에 동·북문과 치성 11개소를 복원할 계획이다. 또한, 성 안에 남아 있는 동경관과 집경전 등의 유적도 정비할 예정이다. 성곽과 연관된 1만9100여 m²의 토지와 79채의 가옥도 매입하여 철거된다. 2018년 11월 8일에는 향일문(向日門)이라고 불리던 동문과 동쪽 성곽 324m를 우선적으로 복원했으며, 2019년까지 동쪽 성곽의 나머지 구간 160m를 정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