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3-26 23:55:14

부청하

夫淸河
1943년 9월 1일 ~ ([age(1943-09-01)]세)

1. 개요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의 사회기관단체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제주(濟州)[1]이다.

2. 생애

1943년 9월 1일 전라남도 제주도 조천면(現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서 아버지 부사림(夫仕琳, 1917. 10. 5 ~ 1948. 10. 26)[2]과 어머니 순흥 안씨 안인수(安仁洙, 1923. 3. 20 ~ 2007. 12. 1)[3] 사이의 1남 1녀 중 외아들 태어났다. 외도국민학교, 귀일중학교, 제주제일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사회사업학과를 졸업하고 어느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6살 되던 1948년 제주 4.3 사건 당시 아버지가 외출한 뒤 고향 마을 몇 사람과 함께 어느 굴에 피신했다가 1948년 10월 26일[4] 토벌대의 손에 변을 당했고, 그 또한 토벌대를 피해 마을에 있는 어느 굴에서 3일간 숨어 있었다. 외조부 안성오(安成五)가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했고, 외조모와 함께 친조모 광산 김씨(1875. 12. 1 ~ ?. 1. 28)[5]의 집안 사람으로서 순경으로 근무하던 '김 순경'을 찾아 구좌면 김녕리로 갔다. 그러나 그로부터 '폭도들은 여기에 있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조천면 북촌리로 가서 외조모의 손에서 자라났다. 이후 인근 동복리에서 공비들의 기습으로 토벌대 소속 군인 2명이 전사했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1949년 1월 17일 조천면 북촌리에서 마을 주민 300여 명이 학살당한 ' 북촌사건'이 벌어졌다. 이때 그 또한 '너븐숭이' 근처 밭으로 끌려나갔으나 토벌대가 총살형을 집행하던 순간에 외조모가 치맛자락에 그를 숨겼고, 때마침 사격중지 명령이 떨어져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이튿날 군인들의 지시로 조천면 함덕리로 갔다가 그 사이 어머니가 박씨 집안으로 개가했기 때문에 제주보육원[6]에 보내졌고, 이곳에서 12년간 생활했다.

중앙대학교 졸업 후 1972년 11월부터 1979년 4월까지 사회복지법인 홀트아동복지회 회장을 지냈고, 1973년 2월 28일부터 1981년 1월 18일까지 제4·5·6·7대 한국사회사업가협회(現 한국사회복지사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1976년에는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에 있는 사회복지법인 상록보육원 대표이사 겸 원장에 취임해 현재에 이른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제주도 제주시·북제주군·남제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현오봉 후보와 무소속 변정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제주시·북제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열린우리당 김우남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 열공계(悅公系) 20세 하(河) 항렬. [2] 제주부씨족보 권2 361쪽에는 夫仕으로 등재되어 있다. [3] 안성오(安成五)의 딸이다. [4] 양력 11월 26일 [5] 김승영(金承永)의 딸이다. [6] 제주시 이도일동 삼성혈 근처, 용담동, 화북동, 외도동 등지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