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1 18:56:27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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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평가
관련 전쟁 돈바스 전쟁,(2014~), · 우크라이나 침공,(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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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어린 시절3. 연예인 시절(정계 입문 전)4. 대통령 당선5. 대통령 재임기

1. 개요

現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의 생애에 관해 적은 문서.

2. 어린 시절

1978년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크리보이로크(Кривой Рог)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할아버지는 소련군 소속으로 2차대전에 참전했었다. 1947년생 전기공학자인 아버지 올렉산드르 젤렌스키는 크리비리흐 경제 연구소에서 사이버 네트워크 및 컴퓨터 하드웨어학과 교수로 근무했으며 그의 어머니인 림마 젤렌스카도 공학자이다.

아버지가 몽골 에르데네트에서 20년간 근무하게 되자 아버지를 따라 몽골에서 4년을 살다가 어머니에게 건강 문제가 생겨 우크라이나로 귀국하였다. 10대 시절에는 역도, 레슬링, 사교댄스를 배우기도 했고 학교 앙상블의 기타리스트로 있기도 했다. 16세 때 이스라엘에서 공부하고자 토플 시험을 보고 자격을 갖추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떠나지 못했다. 이후 키이우 국립경제대학에서 경제학 학사와 법학 석사를 취득했으나 법조인이 되지는 않았다.

3. 연예인 시절(정계 입문 전)

코미디언을 꿈꾸었던 그는 학업을 빠지면서까지 코미디 연습을 했다고 한다. 17세 때 처음으로 코미디 경연 프로그램으로 TV에 등장했으며, 1997년 코미디 경연 프로그램에서 우승하며 주목받는 신예 코미디언이 되었다. 이후 크바르탈 95(Квартал 95) 팀을 만들어 KVN 등 각종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쌓아갔다.

2003년 KVN을 떠나 TV에서 콘서트를 열기 시작했고 아예 동명의 제작사를 설립하여 총괄프로듀서로 활약했다. 중학교 동창이자 제작사에서 작가로 일했던 올레나 키야슈코와 8년 연애끝에 결혼하였다. 2006년에는 우크라이나판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출연,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1] 우크라이나의 그룹(Kazaky)를 패러디를 하기도 했다. # # 춤을 상당히 잘 춘다.

이후 본인이 감독, 제작, 각본, 심지어 주연 배우로 참여하는 여러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 그리고 영화를 만들어 다방면에서 활동을 이어갔고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는 물론이고 러시아, 벨라루스, 몰도바 등에서도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2013년 1월 1일에 방송된 러시아 TV쇼 '갈루보이 오고뇨크(Голубой огонёк)'[2]에서 러시아 코미디언 막심 갈킨과 함께 꽁트하거나 춤을 추었고, 여러 연예인들의 무대도 소개하는 역할도 맡았는데, 현 로시야 1의 악명 높은 진행자인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3]도 연회석에서 즐겁게 관람하는 영상이 남아있다.[4] 지금보면 참 격세지감인 부분이다. #

이 당시에는 러시아 배우들과 같이 영화를 찍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촬영된 영화와 TV프로그램이 유로마이단 혁명과 크림반도 병합이후로 우크라이나 내의 반러 기조에 따라 방영이 금지되는 웃지 못한 일도 겪었고, 본인도 우크라이나군에 군사자금을 기부하면서도 이 점에 대해 불쾌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2015년, 역시 본인의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시트콤 ⟪ 국민의 일꾼⟫ 에서 역사 교사 출신으로 대통령이 되어서 부정부패에 저항하는 청렴한 주인공을 친근한 모습으로 연기했는데 시트콤이 우크라이나 내에서 최대 시청자 수 2,000만명을 기록할 정도로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국민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정치와는 거리가 먼, 잘 나가는 코미디언이자 배우에 불과했지만, 어릴적부터 사회의 편견을 비판하는 쪽이었다는 은사의 증언을 보면 정치적인 관심을 꾸준히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4. 대통령 당선

인민의 종에서 대통령 역을 맡게 되면서, "혹시 진짜로 대통령이 될 마음은 없나?"는 질문을 수시로 받았다. 이때 당시 본인의 답은 "아니오"에 그쳤고, 대통령 역할이 현실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그러나 인민의 종 출연진들이 2018년 3월 동명의 정당을 창당하면서 젤렌스키 후보도 대권주자로 부상하기 시작했으며, 고심 끝에 새해를 하루 앞둔 12월 31일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기득권만을 위한 분위기를 탈피하고 싶다"고 밝히며 대선 도전을 선언한다. 이리하여 일개의 코미디언에 그쳤던 젤렌스키 후보는 단숨에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도 존재한다.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 준 드라마 인민의 종을 방영한 채널 ‘ 1+1(один плюс один)’은 우크라이나의 금융재벌인 이호르 콜로모이스키(Ігор Валерійович Коломойський) 소유의 방송국이다. 일개 배우가 뭔 돈으로 전국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었는지 의문이고 그래서 젤렌스키가 콜로모이스키의 배후 조종을 받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이후, 콜로모이스키의 은행 사유화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을 보면 예상과 달리 재벌에게 휘둘리는 정치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에서는 기존 정치인들의 계속된 실책으로 이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매우 높아진 상태였기 때문에, 젤렌스키 후보는 거기에 물들지 않은 새로운 피라는 점을 어필하여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기록하다가, 3월 31일 1차 투표에서 30.24%를 얻어 15.95%를 얻은 페트로 포로셴코 전 대통령과 함께 결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당초 어느 정도 접전이 예상되었으나, 2차에서 73.19%를 얻어 24.48%를 얻은 포로셴코를 약 50%p에 가까운 큰 표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2019년 기준 만 41세인 그는 우크라이나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으로 기록되며, 5월 20일 공식 취임하였다. 영상. 인민의 종 소속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법적으로 대통령의 당적 보유가 금지되어 있으므로 탈당했다.
파일:20190520_haring_large.jpg
제6대 우크라이나 대통령 취임식[5]
대통령 취임식에선 본인 집에서 취임식 현장까지 도보로 이동하는 파격을 보였다. 그리고 취임날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Протягом свого життя я намагався робити все, щоб українці усміхалися. Це була моя місія. Тепер я робитиму все, щоб українці принаймні більше не плакали.
''나는 평생 동안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해왔다. 그것이 나의 사명이었다. 이제 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최소한 울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할 것이다.''

5. 대통령 재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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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처 [2] 한국으로 치면 명절 특집 쇼프로그램으로, 대체로 매년 1월 1일 12시 5분에 방송된다. [3] 지금보면 웃긴 일이지만 2013년까지만 해도 크림반도 탈환을 위해서 우크라이나인들과 싸우는 것은 전쟁범죄고,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게 될것이라면서 크림반도 병합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던 사람이었다. 즉, 이 당시까지만 해도 정권비판의 상징에서 푸틴의 딸랑이가 되었다고 비웃음을 당할지 언정, 우크라이나인들이 불쾌감을 보일것까지 없던 사람이었는데 유로마이단을 전후해서 입장을 바꾼것이다. [4] 참고로 막심 갈킨과 그의 아내 알라 푸가초바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했다가 '외국 요원'으로 찍혀 2022년 현재는 두바이에 체류하고 있다. [5] 목에 매고 있는 목걸이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취임식 선서마다 목에 거는 것으로, 키예프 루스의 상징이자 우크라이나의 국장인 푸른 방패와 노란 삼지창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