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2 23:55:48

보스니아 합병


1. 개요

190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보스니아를 합병하여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공동통치령을 수립한 사건.

2. 오스트리아의 정당성

제6차 러시아- 오스만 제국 전쟁을 마무리지은 산 스테파노 조약에 경악한 유럽 열강들이 1878년의 베를린 회의에서, 오스트리아의 보스니아 영유를 인정하였다. 사실, 그 이전에도 1875년 라이히슈타트 비밀협정에서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는 이 문제에 대해 오스트리아의 보스니아 합병을 합의한 바 있었다. 이로서, 보스니아는 명목상으로는 오스만 제국에 속했지만, 실질적으로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

3. 제1차 발칸 위기

알헤시라스 회담으로 독일 제국이 국제적으로 고립된 것을 확인한 오스트리아는 열강의 시선이 독일에게 쏠린 틈을 타서 30년 전 약속된 바를 이행하려 했다. 그러나, 세르비아와 러시아가 이에 딴지를 걸었다. 세르비아는 대오스트리아 전쟁을 원했으나, 러시아가 이에 반대하였다.

이에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외무부 장관 알로이스 폰 애렌탈과 러시아 제국 측 인사인 알렉산더 이즈볼스키가 비밀 회담을 가졌다. 이 때 애렌탈은 자국의 의사를 온전히 천명한 것으로 받아들였지만, 이즈볼스키는 보스니아 합병에 반대하면서 자국의 제국주의적 팽창 야욕을 드러내며 이를 강대국 간의 회담에 부치자는 무리한 요구를 했다. 회담은 개최되지 않았지만, 이 일로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4. 결과

러시아는 제대로 된 조약 체결도 없이 세르비아 왕국에 대한 보호를 천명했으며, 종교적 이념에 입각해 발칸 보호를 명분삼아 세계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이렇게 고조된 위기는 제1차 발칸 전쟁 직전에 7월 위기로 나타나게 된다. 한편, 세르비아는 이에 분노하였고, 이탈리아 왕국의 은밀한 의사 타진을 받아들여 범슬라브주의 운동을 지속해 나간다. 결국, 오스트리아령 보스니아 지역에서 단결 혹은 죽음에 의한 사라예보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