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6-08-17 01:18:40

버나드 맨더빌


Bernard de Mandeville
1670~1733

1670년 네덜란드 로테르담 출생하였다. 에라스뮈스 학교에서 라틴어를 배웠고 레이던대학교에서 의학과 철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1690년 로테르담에서 일어난 코스터만 폭동에 관여하였는데 당시 폭정을 펼쳤던 행정관 반 니벨트를 파면시켰다. 하지만 무죄로 석방되어 행정관으로 복직하자 네덜란드를 떠나 영국에 정착하였다.

영국에서는 병원을 개업하였으며, 문필활동도 전개하였다. 1705년 《투덜대는 벌집》이라는 풍자시를 발표하였는데 사회의 악덕이 사회발전과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내용을 담았다. 1714년에는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Private vices, publick benefits)’이라는 부제가 붙은 풍자시 《꿀벌의 우화 The Fable of the Bees》를 발표하여 당시 영국사회 모든 계층의 기만과 인간본성에 대한 기성도덕의 위선적 견해를 비판하였다. 당시 악덕으로 비난되었던 인간의 이기심이 누구에게나 있는 본성이라고 했다. 또한, 절약을 미덕으로 삼는 일반적 경제관에 반대하여 인간의 도덕적 약점과 아욕(我慾) 등에서 비롯되는 소비야말로 부(富)의 증대와 실업의 해소, 그리고 국가의 경제발전을 가져온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버클리와 같은 기성도덕의 옹호자들과 가독교인들을 격분시켰고 맨드빌을 비난하기 위해 Man-Devil(인간 악마)로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1724년에는 자신의 반박문을 담은 증보판이 출간되었는데 '노련한 정치인이 개인의 악덕을 잘 다룬다면 사회의 이익으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1729년에는 《꿀벌의 우화》 제2권이 출간되었다. 1733년 63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맨더빌이 인간의 위선적인 모습을 벗겨내고 참모습을 이라고 그렸던 이기심과 물질욕구 등 이러한 본성을 잘 이용해서 법과 제도를 만들면 국가의 통치가 잘되고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특히 분업을 통해서 노동을 단순화시키면 복잡한 일을 문제없이 해낼 수 있으며 같은 일을 혼자서 해낼 때보다 훨씬 쉽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숙련되지 않은 노동자를 고용해도 어려운 작업을 해낼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기존의 도덕관념으로는 악의 뿌리라고 생각되던 돈(money)이 시민사회의 질서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며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맨더빌의 생각은 중세유럽 사상에 적지않은 충격을 주었으며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지만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과 고전 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 등의 경제사상가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자유경제와 자유무역의 이론발전에 기여하였다.

출처 :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