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철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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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철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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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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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인 | ||
이름 |
백종철 白鍾哲 | Baek Jong-chu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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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66666> 출생 | 1961년 3월 9일 ([age(1961-03-09)]세) | |
경상북도 구미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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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180cm | |
직업 |
축구 선수 (
중앙 공격수 / 은퇴) 축구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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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청구중학교 (1974~1976) 청구고등학교 (1977~1979) 경희대학교 (1980~19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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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colbgcolor=#666666> 선수 |
현대 호랑이 (1984~1988) 일화 천마 (1989~1991) |
지도자 |
호남대학교 (1992 / 수석코치) 천안 일화 천마 (1993~1998 / 코치) 영진전문대학교 (1999~2010) 대한민국 여자 U-20 대표팀 (2004~2006) 부산 아이파크 (2011 / 수석 코치) 대구 FC (2013) 안산 무궁화 FC U-18 (2016) 부산외국어대학교 (2017~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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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8경기 1골 ( 대한민국 / 1985~19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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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현대 호랑이의 창단 후 첫 골의 주인공이자 K리그 역사에서 묻혀진 최초의 신인 득점왕. 포지션은 중앙 공격수였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1983년 경희대학교를 졸업하고 1984년에 갓 창단한 현대 호랑이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경력을 시작하였다. 현대의 첫 골과 첫 승을 이끈 결승골의 주인공이 되어 울산 현대 역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크로스된 공을 가슴으로 받아 그대로 발리 슛으로 연결한 것이 골로 연결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1984시즌 28경기에 출전하여 16골로 K리그 최초의 신인 득점왕 타이틀을 갖게 됐다. 당시 그의 별명은 '바람의 슈터'.하지만 화려했던 데뷔 시즌을 제외하면 백종철의 기록은 초라하다. 이유는 부상과 무리한 출전 감행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1988년에 부임한 김호 감독과 관계가 좋지 않아 이후 팀을 떠났다.
1989년 신생팀 일화 천마로 이적했다. 일화로 이적한 백종철은 22경기에서 10골을 성공시켜 재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일화에서 좋은 시기를 보내던 백종철은 1991년 4월 헤딩 경합 후 착지 과정에서 발목을 접질러 허무하게 은퇴를 하고 말았다.
2.2. 국가대표 경력
1989년 일화 천마에서의 활약으로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되어 이탈리아 월드컵 예선을 뛰었다.3. 지도자 경력
일화에서 은퇴 후 호남대 코치로 1년 간 있다가 1993년 일화의 코치로 복귀했다. 박종환 감독, 이장수 코치 밑에서 팀의 재건에 기여하며 일화의 첫 K-리그 3연패, 아시안 슈퍼컵, 아프로-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 등 수많은 영광을 함께 했다. 이후 레네 드자이에르 감독 체제에서 수석코치로 있다가 1998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났다.1999년 영진전문대학 여자 축구부 초대 감독으로 부임했고 1999년부터 2003년대회까지 3연패를 이루며 감독으로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2010년까지 영진전문대를 이끌며 여자축구계에서 두각을 보였다. 이러한 성적을 인정받아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대한민국 U-20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아 2004년 아시아 여자 청소년 대회에서 승승장구하며 우승을 차지했고, FIFA U-19 세계 여자 축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해 대한민국의 첫 승을 만들어냈다.
2011년, 일화 시절 인연이 있는 안익수 감독의 부름을 받고 부산 아이파크의 수석코치로 부임하며 다시 남자축구계로 돌아왔다. 그리고 부산의 6년만의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기여했다. 시즌 종료 후 부산을 떠났다.
2013년 4월 23일 성적 부진으로 사임한 당성증 감독의 후임으로 대구 FC의 감독으로 내정되었다. 하지만 대구 FC가 K리그 챌린지로 강등당하자 이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2016년에는 새로 창단된 안산 무궁화 U-18 유소년 팀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2017년 중반 부산외대 남자 축구부 감독으로 부임해 2년 간 활동했다.
4. 여담
- 허무한 은퇴를 두고두고 아쉬워한 본인은 은퇴가 아니라 조퇴했다고 표현한다. 몸이 너무 좋은 상태에서 은퇴해서 지금도 경기에 나서면 잘 뛸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 신인왕이 없던 시기여서인지 모르겠지만, 백종철은 신인이던 1984년에 득점왕을 차지하고도 신인 득점왕으로 언급 자체가 되고 있지 않다. 임근재나 노상래 역시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백종철은 더더욱 인지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