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태천 에서 태어났다. 188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유인석과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남만주로 망명한 후,
조병준,
전덕원 등과 함께 환인현 등지에서 농무계와 향약계 등을 조직해 동포들의 정착 자치생활을 도모하고 독립운동의 기반을 닦기위해 노력하였다.1919년
박장호,조병준,전덕원 등과 함께 봉천성 유하현 삼원보에서
대한독립단을 조직, 부총재로서 대한독립단의 무력을 정비하였다. 그리고 만주 각 현과 국내에 독립단 지단을 설치해 조직을 강화하는 한편 일제의 주구기관인 보민회, 일민단, 강립단 등의 소속 인물들을 주살하고, 국내진입을 도모하는 등 무력활동을 지휘했다. 그는 복벽파로서 박장호,전덕원 등과 함께 기원독립단의 영수였으나 독립운동상에서는 모든 독립운동자들과 함께 행동을 통일하여 활동했다. 1920년 5월 일본군 판본등이 관전현 향로봉의 청년단을 습격한다는 정보를 듣고 청산구에 갔다가 부하
김덕신과 함께 잡혀 환인현 사첨자에서 총살당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