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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75년 |
경상남도 부산 | |
사망 | 1919년 3월 23일 |
묘소 | |
본관 | |
가족 | |
학력 | |
서훈 | 애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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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2. 생애
1919년 3월 경남 합천군(陜川郡) 삼가(三嘉) 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피살, 순국하였다.김상준(金相峻)과 윤규현(尹圭鉉)은 고종 인산(因山)과 3ㆍ1운동에 참가하고,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윤규현은 한필동(韓弼東)ㆍ허동규(許東奎)ㆍ한식동(韓湜東)ㆍ윤구현(尹求鉉)ㆍ윤승현(尹承鉉)ㆍ허장(許鏘) 등과 논의하여 만세운동을 단행하기로 하였다. 이들은 삼가면 등 각 면에 이 계획을 알려, 3월 23일 삼가시장에 모이도록 하였다.
3월 23일이 되자 쌍백면(雙栢面)에서는 4,000여 명의 군중이 면사무소를 불태우고, 전주 2본을 끊어 통신을 차단시킨 뒤 4km를 행진하여 삼가시장으로 왔다. 가회면(佳會面)과 생비량면(生比良面) 등지에서도 농악을 울리면서 속속 시장에 도착하여, 모인 군중이 1만 2, 3천 명에 이르렀다.
오후 3시 정금당(正衿堂) 앞 광장에서 김전의(金典醫)ㆍ정방철(鄭邦哲)ㆍ김달희(金達熙)ㆍ임종봉(林鐘鳳) 등이 연사로 나와 일제의 침략상을 규탄하며 민족운동의 당위성을 역설하였다. 마지막 연사인 임종봉의 강연이 절정에 달했을 때 헌병이 갑자기 총격을 가하였다. 총탄을 맞은 임종봉이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지자, 분노한 군중은 군경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시위 군중은 군경을 쫒아 곤봉과 낫을 들고 경찰주재소와 우편소로 돌진하였다. 이때 일본 군경이 총격을 가하여 13명이 순국하고, 3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날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배숙원도 총탄을 맞고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