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98년과 2005년 두 번에 걸쳐 활동했던 발해 무역항로 일본도(발해) 복원을 위한 학술 탐사대.2. 1차 발해뗏목탐사대
나라에 짐이 된다는 것이 부담스럽다. 더욱이 오늘 한·일 어업 협정이 일방적으로 파기되었다는데 그들의 속셈이 드러났다고 보아진다. 무엇보다도 내가 의연해지고 싶다. 미래와 현재의 공존과 조화. 바다를 통한 인류의 평화 모색. 청년에게 꿈과 지혜를 주고 싶다. 탐험정신. 발해의 정신.
- 장철수 대장이 다른 대원들과 같이 최후를 맞기 전날에 쓴 일기 내용 중에서
- 장철수 대장이 다른 대원들과 같이 최후를 맞기 전날에 쓴 일기 내용 중에서
발해1300호기념사업회 홈페이지 - 발해 1300호 탐사대원들의 준비과정, 항해일지, 대원소개, 보도자료 등이 게재돼 있다.
1997년 12월, 발해 건국 1300년이 되는 1998년을 앞두고 장철수(대장), 이덕영(선장), 이용호(촬영), 임현규(통신) 4명의 탐험에 뜻을 가진 사나이들이 모여 발해~일본 간 해상항로인 일본도(발해) 복원을 목적으로 '발해뗏목탐사대'를 결성해 뗏목 '발해 1300호'를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부산을 거쳐 제주도까지 가려다 파도와 강풍으로 인한 악천후로 예정 항로를 벗어나 1998년 1월 24일에 일본 오키 제도에 상륙하려다 뗏목이 뒤집혀 탐사대 4명 전부가 숨지고 말았다.
발해 1300호 대원 4명의 혼을 위로하고자 세워진 추모비. 통영 수산과학관 내에 있다.
발해 1300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면 《바다의 노래, 땅의 노래》나 《발해 1300호: 우리의 항해는 끝나지 않았다》를 읽어보자.
이렇게 발해 무역항로 복원의 꿈을 담은 발해 1300호의 탐험기는 세상에 잊혀지나 싶었으나...
3. 2차 발해뗏목탐사대
2004년 말엽부터 산악인 출신인 방의천 대장을 중심으로 황기수, 연정남, 이형재 4명이 모여 또다시 탐사대를 결성한 뒤 뗏목 '발해호'를 타고 2005년 2월 18일 러시아 포시에트 항구에서 출발해 일본 니카타까지 가려다 또다시 러시아-북한 접경 해상에서 악천후로 표류하다 2월 21일에 남북한 합동 구조작전으로 구출되어 전원 생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