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계급 제도에 대한 내용은 반상제 문서 참고하십시오.
飯床
1. 개요
밥· 국· 반찬 등을 올린 가장 일상적인 식사 때 상차림으로, 흔히 '밥상'이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밥·국· 김치· 장류· 찌개· 전골· 찜을 제외한 나머지 반찬의 가짓수에 따라 3첩 반상·5첩 반상·7첩 반상·9첩 반상·12첩 반상 등으로 나뉘는데, 이 중 12첩 반상은 왕과 왕비의 반상으로서, 수라상(水刺床)이라 한다.[1]본래 겸상을 하지 않았던 한국에서는 1인분의 식사를 반이나 소반 같은 식사용 탁자 위에다 차리는 것이 기본적인 반상의 모습이었다.
전통 한국요리를 차리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방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새로운 문서들이 발견되면서 이 방식이 옳은지 그른지 논란이 있는데 아직까지는 정확한 결론이 나오지 않은 상태이다.
2. 구성
- 3첩 반상: 생채/ 숙채 + 구이/ 조림 + 마른반찬/ 장아찌/ 젓갈
- 5첩 반상: 생채/ 숙채 + 구이 + 조림 + 전 + 마른반찬/ 장아찌/ 젓갈[2]
- 7첩 반상: 생채 + 숙채 + 구이 + 조림 + 전 + 마른반찬/ 장아찌/ 젓갈 + 회/ 편육[3]
- 9첩 반상: 생채 2첩 + 숙채 1첩 + 구이 2첩 + 조림 + 전 + 마른반찬 + 회/ 편육[4]
- 12첩 반상: 수라상 참고.
일반적으로 한 상에 모든 음식을 올리는 프랑스식 서빙(service à la française) 방식으로 제공된다.
3. 상차림 규칙의 유래
교과서에서는 주로 12첩 반상을 기준으로 가르치고 대중매체는 주로 식객을 통해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이것이 잘못된 지식은 아니었으나 시대가 발전하면서 역사학자들이 연구를 거듭했고 새로운 유래가 계속 나오고 있는 중이다.3.1. 이왕직의 상궁설
이왕직이란 일제강점기 때 조선이 망하고 이왕가로 격하된 조선왕실의 사무일체를 담당하던 기구를 말한다.3.2. 시의전서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저자미상의 조리서. 시의전서에는 5첩, 7첩, 9첩의 반상도식이 등장하는데 12첩 반상은 등장하지 않는다.3.3. 원행을묘정리의궤
22대 국왕 정조가 친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화성에 가서 진연을 배풀고 다시 환궁 할 때 까지의 기록. 원행을묘정리의궤에서는 그릇을 세는 방법이 첩이 아닌 기로 표현된다. 왕의 식사도 12첩이 아닌 7기로 적혀 있다.3.4. 중국의 의례와 예기에서 유래
고대 중국에서는 신분과 계급에 따라 상차림을 다르게 했는데 그 기준이 청동솥이었다. 청동기 솥인 정의 개수로 구분을 했는데 일정, 삼정, 오정, 칠정, 구정으로 구분했다.
[1]
대한제국 이후 시기부터. 대한제국 선포 이전에는 9첩 반상을 수라상으로 받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2]
여기에 기본찬으로
찌개/
전골/
찜이 추가된다.
[3]
여기에 기본찬으로
찌개 +
전골/
찜이 추가된다.
[4]
여기에 기본찬으로
찌개 +
전골 +
찜이 추가되며,
생채와
구이를 1첩씩 줄이고 그 자리에
장아찌와
젓갈을 올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