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홍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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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KBO 퓨처스 북부리그 최우수 평균자책점 |
LG 트윈스 등번호 61번 | ||||
최근일 (1992~19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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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홍 (1994~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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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 (2002~2010) |
박철홍 朴徹鴻 | Park Cheol-H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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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0년 3월 16일 ([age(1970-03-16)]세)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신일고 - 고려대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94년 2차 3라운드 (전체 22번, LG) |
소속팀 |
포스콘 야구단 (1992~1993) LG 트윈스 (1994~2001) |
지도자 | 고려대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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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 대한민국의 야구선수다.2. 선수 경력
고교 시절 고교 제일의 잠수함 투수로 평가받았다. 1987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당시 1번타자 중견수 박재용(3학년), 2번타자 3루수 송태일(2학년), 3번타자 좌익수 동봉철(3루수), 4번타자 포수 권오성(2학년)과 함께 신일고를 우승으로 이끌었다.고려대 진학 후에는 신입생 때 박동희 투수의 보조투수 역할, 2학년 이후에는 1년 후배인 좌완 이상훈 투수와 번갈아 등판했다.
고려대 졸업 후 OB 베어스의 지명을 받았으나 거절하고 대신 한국실업야구 포스콘(포항제철 산하)에 입단했다. 포스콘에서 두 시즌 동안 24승 2패를 기록하며 실업야구의 선동열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25세이던 1994년 LG 트윈스에 지명되어 입단했다. 지명 동기로 유지현(1차), 인현배(2차 1라운드), 최동수(2차 4라운드), 서용빈(2차 6라운드) 등이 있었으며 고졸 신인은 김재현과 신윤호가 있었다. 언더핸드 스로 투수였으며 시속 130 후반~140 초반의 직구, 커브, 슬라이더를 구사했다. 1994년 LG 1군 레귤러 투수 중 유일한 언더핸드로, 이해 중간계투 요원으로 뛰면서 팀의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견인했다. 이후 1995년에는 5선발을 맡아 인현배의 빈자리를 채웠고 9승 5패 2세이브 방어율 3.09를 기록했다. 1996년에는 3승 9패 2세이브 방어율 3.91을 기록했고 선발요원으로 활약했다.
1996년 7월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았으나 박철홍의 부친이 병무청 군의관에게 2천만원을 건넨 혐의로 구속당하는 시련을 겪었고 1997년 시즌에는 방어율이 6점대 이상으로 치솟는 부진에 빠졌다. 소집해제 후 1999년에 복귀했지만 2001시즌까지 30이닝도 던지지 못하고 은퇴하였다.
은퇴 후 모교인 고려대 투수코치로 약 10년 간 활동했다. 2011년 부터는 대치중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