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박병한(朴炳翰) |
이명 | 박병한(朴炳漢) |
생몰 | 1888년 9월 11일 ~ ? |
출생지 | 경상북도 문경군 문경읍 상초리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박병한은 1888년 9월 11일 경상북도 문경군 문경읍 상초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경 군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내자는 정인옥의 계획에 찬동하여, 임종룡(任鍾龍)ㆍ박노동(朴魯東)ㆍ김병태(金秉泰)ㆍ전상준(全相俊)ㆍ홍순창(洪淳昌)[1]ㆍ윤상욱(尹相旭)ㆍ 권명상ㆍ진진권(陳振權)ㆍ 홍승욱 등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했다. 또한 1921년 5월 30일 한성규(韓星奎)와 함께 경북 봉화군 가평리에 거주하는 홍재명(洪在明)의 집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소속임을 알리고 독립을 고취하는 문서를 보이며 군자금을 모집했다. 그러나 이 일이 경찰에 발각되면서 체포된 그는 1921년 8월 4일 공주지방법원 충주지청에서 사기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출옥 후인 1922년 6월 17일, 그는 임종룡과 함께 경북 문경군 호서남면 신기리에 거주하는 유성옥(劉盛玉)의 집에서 다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었다. 이후 1923년 3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 및 강도 혐의로 징역 8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1928년 2월 1일 가출옥했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박병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