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학교 축구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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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43773><colcolor=#ffffff> 이름 |
박규선 朴圭善 | Park Kyu-s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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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1년
9월 24일 ([age(1981-09-24)]세) 경기도 구리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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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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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182cm | |
직업 |
축구 선수 (
미드필더,
공격수 / 은퇴) 축구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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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구리부양초등학교 구리중학교 서울체육고등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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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colbgcolor=#243773><colcolor=#ffffff> 선수 |
울산 현대 호랑이 (2000~2003) 전북 현대 모터스 (2004~2005) 울산 현대 호랑이 (2006) 부산 아이파크 (2007~2009) → 광주 상무 불사조 (2008~2009 / 군 복무) |
감독 |
한남대학교 축구부 (2011~2019 / 코치)[1] 한남대학교 축구부 (20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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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8경기 ( 대한민국 / 2004~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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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 現 한남대학교 축구부 감독.2. 클럽 경력
서울체고를 졸업하고 당시 연고 협약이 되어있던 울산 현대 호랑이에 드래프트를 통해 입단했다. 당시 울산의 고재욱 감독에 의해 어린 선수들이 기회를 많이 받고 있었고, 이후 후임 김정남 감독 아래에서도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에 박규선도 덕분에 대부분 교체 출전이었지만 데뷔 시즌 11경기, 2001 시즌 26경기에 출전하며 경기 경험을 쌓았다.2002 시즌부터 점차 선발 기회가 늘어났다. 김정남 감독이 이천수, 최성국 등 신예 선수를 중용했고, 박규선 또한 25경기 2도움을 기록하며 진일보했다. 그러나 시즌 막판 발가락 골절상을 당하며 2003 시즌은 기나긴 재활로 대부분 날려먹고 만다. 이게 박규선 선수의 부상 악령의 시작이었다.
결국 2004년 3억 5천만원이라는 적지않은 이적료로 전북에 입단했다. 다행히 전북에서는 조윤환 감독 아래 꾸준히 뛰면서 제 폼을 찾아갔고, 울산에서보다 공격적인 포지션으로 기용되어 2004 시즌 17경기 1골, 2005 시즌 21경기 1골로 멀티 측면 자원으로 성공적인 정착을 해냈다. 이 활약 덕택에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후 줄곧 본프레레호 체제의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게 된다.
그러나 2005년 여름 부임한 최강희 감독 체제에선 거의 전혀 기회를 받지 못하는 전력 외 자원으로 분류돼 버렸다.
결국 2006 시즌을 앞두고 본인의 강력한 이적 요청으로 울산에 재입단한다. 김형범을 전북이 받는 대신 박동혁과 박규선이 가는 2대1 트레이드 형식이었다. [2] 2006 시즌 울산에 컴백해서도 주전으로 뛰었다.
그런데 2007 시즌 다시 부산으로 이적하는 선택을 했고, 이는 좋지 못한 선택이 되어 시즌 18경기 출전에 그쳤다. 그마저도 16경기가 교체 출전이었으니 데뷔 이후 최악의 폼을 보여주고 만 셈이다. 이때 시미즈 S펄스 이적설이 돌기도 했으나 구단의 반대와 군문제가 겹치며 무산되고 말았다.
결국 2008년 병역 해결을 위해 광주 상무에 입대한다. 상무의 선수 수급 특성 때문에 선수들이 포지션 변경을 하는 일이 잦은데, 박규선 선수도 상무에서 공격수로 기용되었다. 32경기 4골 3도움이라는 나쁘지 않은 스탯을 올렸다. 그런데 2008년 11월 9일, 리그 마지막 대전 원정에서 상대 태클에 왼발목이 부러지는 심각한 부상을 당하고 만다. 여기에 잘못된 진단, 잘못된 수술까지 겹쳐버리며 여러 차례 수술을 받고 몸이 망가져버렸다. 2010년부터 다시 개인 훈련을 하는 등 복귀를 위해 노력했으나 복귀하지 못하고 결국 2010년 말 선수생활을 접게 된다.
3. 국가대표 경력
2000년 U-19 대표팀을 시작으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에 연이어 선발되며 엘리트 코스를 착실히 밟아왔고, 2004년부터 2005년까지 A대표팀 멤버로 뛰기도 했다. 당시 본프레레 감독이 맘마미아를 외칠 정도로 인상깊은 선수였다. 김영광을 필드로 훈련시켰으나, 김영광의 페인팅 후 접기 한방에 날라가버렸다. 본프레레의 맘마마아와 함께 더 이상 대표팀에선 볼 수 없었다고...4. 지도자 경력
2011년, 구리중시절 은사인 이상래 감독의 권유에 응하며 한남대학교 축구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3]2019년, 여범규 감독의 후임 감독으로 한남대학교 축구부를 이끌게 되었다.
2022년에 열린 제17회 1.2학년 대학축구연맹전 백두대간기 결승에서 고려대학교를 꺾고 정상에 올랐다.
2023년에 열린 제59회 춘계대학연맹전 통영기 결승에서 연세대학교를 꺾고 정상에 올랐다. 또한 춘계 및 추계대학축구연맹전, 전국체전까지 거머쥐며 대학 축구 최초로 대학무대 4관왕의 그랜드슬램을 차지하며 명실상부 U리그 최고의 지도자로 거듭났다.
[1]
2013년 일부 경기는 이상래 감독의 투병 및 별세로 감독 대행으로 임시로 지휘했다.
[2]
국가대표급 박동혁과 박규선이 신인급 선수인 김형범과 트레이드된 이 사건은 당시 많은 논란이 생기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 박규선을 제외한 두 선수는 양 팀의 레전드 선수가 되는 결과를 낳는다.
[3]
이상래 감독은 2013년 8월 30일 새벽 3시에
간경변으로 52세라는 이른 나이에 별세했다. 같은해 5월 24일 영남대와 U리그 경기 도중 쓰러져 3개월여간 투병 생활을 해왔었다. 2013년 잔여 경기는 박규선이 감독 대행으로 이끌었고 2014 시즌부터 후술할 여범규가 부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