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47a0> 출생 | 1899년 |
함경남도 함흥시 함흥읍 하서리 | |
사망 | 1932년 4월 9일 |
서대문형무소 | |
직업 | 독립운동가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박강협은 1899년경 함경남도 함흥시 함흥읍 하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5년 6월 27일 함경남도 함흥 동명극장에서 열린 함흥청년회 주최 강연회에서 "우리의 생활과 예술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강연했다가 강연이 지나치게 과격하다는 이유로 함흥경찰서에게 조사받았다. 이후 1925년 7월에 함흥청년회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가 이듬해 일본 도쿄에서 발간하는 대중신문 함흥지국 설치 당시 과격한 광고문을 붙였다는 이유로 또다시 체포되어 29일간 구류되었다.1926년 10월 24일 함흥청년회 주최 강연회에서 "민중의 진로"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한 박강협은 1927년 서울에서 북풍회 계열인 조선사회단체중앙협의회 창립대회에 함흥지역 대표로 참석했다. 또한 1928년 함흥청년동맹 검사위원으로서 함흥지역 동맹휴교 사건 진상에 대한 내용을 출판, 보급했다가 체포되어 80원의 벌금을 내야 했다. 이후 1931년 9월 태평양노조 파업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체포된 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32년 4월 9일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박강협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