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9 10:12:52

바실리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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Василий I
파일:바실리 1세.jpg
1371년~1425년 54세
1389년~1425년

1. 개요2. 생애
2.1. 어린시절2.2. 재위

1. 개요

모스크바 대공국 7대 대공.

2. 생애

2.1. 어린시절

바실리는 드미트리 돈스코이와 니즈니노브고로드 대공 드미트리 콘스탄티노비치의 딸인 에우독시아 대공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2.2. 재위

드미트리 돈스코이의 장남이었던 바실리는 1382년 아버지가 킵차크 칸국에게 털리자 블라디미르 대공의 지위와 그의 아버지의 목숨 유지를 위해 토크타미쉬 칸에게 인질로 끌려가 1386년까지 토크타미쉬의 궁정에서 지냈다.

이후 모스크바 대공국이 킵차크 칸국의 공격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해, 바실리 1세는 1392년에 리투아니아 대공 비타우타스의 외동딸인 소피아와 결혼하며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이 동맹은 오래가지 못했고 리투아니아와 모스크바는 1406년에서 1408년까지 서로 전쟁을 벌였다. 비타우타스는 스스로를 모든 루스의 영토의 통일자로 자처했고 리투아니아의 발아래에 모든 루스 영토를 두어 장차 제국의 주인이 되겠다는 야심을 품었고 이에 따라 바실리 1세와 충돌했다. 그러나 비타우타스는 루스의 정복에 실패했고 바실리 1세와 평화를 맺은 뒤 튜튼 기사단과의 싸움에 집중하게 되고 이후 리투아니아는 루스 공국들에 대한 영향력을 잃게 된다.

이후 티무르가 1395년에 슬라브 땅을 침공하여 볼가 지역을 휩쓸었지만 모스크바까지 오진 않았다. 티무르의 급습은 킵차크 칸국에게 큰 피해를 입혀 모스크바 대공의 운신에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티무르의 침공 기간 내내 막대한 양의 돈을 칸에게 보내야 했지만...

이후 1408년에 에디구 칸이 모스크바를 침공해 니즈니노브고로드, 고로데츠, 로스토프, 그리고 다른 많은 마을들을 불태웠고 결국 바실리는 1412년에 충성 서약을 해야했다.

이후 1414년에 자신의 딸인 안나를 당시 동로마의 황위 후계자였던 요안니스 8세 팔레올로고스와 결혼시켰고 1416년에 요안니스가 공동황제가 되면서 안나 역시 황후가 되었기에 모스크바의 해외 영향력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었다. 물론 안나가 1417년에 페스트로 사망했고 자식조차 남기지 못하며 얼마 못갔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