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3-27 01:25:00

민종(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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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조 6대 황제
閔宗 貞皇帝 | 민종 정황제
묘호 민종(閔宗)
시호 회의명훈정황제(懷毅明訓貞皇帝)
연호 바오딘(寶定, 1592)
캉흐우(康佑, 1592 ~ 1593)
막(Mạc / 莫)
낀찌(Kính Chỉ / 敬止 / 경지)
생몰 기간 ? ~ 1593년
재위 기간 1592년 ~ 1593년

1. 개요2. 생애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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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막낀찌(Mạc Kính Chỉ / 莫敬止 / 막경지, ? ~ 1593년)는 대월 막 왕조의 제6대 황제(재위: 1592년 ~ 1593년)로 막낀디엔(막경전)의 장남이었다.

2. 생애

당안왕(唐安王)에 봉해졌는데, 일설엔 단웅왕(端雄王)이었다고도 한다.

1564년, 부친 막낀디엔의 첩과 간통한 것이 드러나 병권을 빼앗기고 폐위되어 서인이 되었으며, 막 왕조는 병권을 막낀디엔의 둘째 아들인 단량공(端亮公), 일설엔 당안왕(唐安王)인 막낀푸(莫敬敷, 막경부)에게 주었다. 막낀디엔이 죽자 막 왕조는 막낀찌를 웅례공(雄禮公)에 봉했지만, 병권을 위임하지는 않았다.

1592년, 중흥 후 레 왕조 찐뚱이 막 왕조를 쳐서 탕롱을 함락시키고 황제 막머우헙을 잡아 처형했다. 이때 막낀찌는 동조(東潮) 지역에 있었는데, 이를 듣고 나서 부(部)를 거느리고 지령현(至靈縣)에 이르러 자립하여 황제가 되었으며, 청림(靑林) 일대를 근거지로 삼아 지켰고, '바오딘'으로 개원했다. 막 왕조의 종실인 막낀푸, 막낀타인(莫敬誠), 막낀턴(莫敬愼) 등이 분분히 귀부해 왔고, 해양(海陽), 고평(高平) 일대를 근거지로 삼아 지켰으며, 병력이 70,000명이나 되었다. 전임 황제 막머우헙의 아들 막또안은 인심이 불복하자 막낀찌에게 몸을 의탁했다. 후 레 왕조의 찐뚱이 응우옌텃리(阮七里), 부이반쿠에(裴文奎), 쩐박니엔(陳百年), 응우옌응아(阮峨) 등을 보내 막낀찌를 쳐서 패배시켰다.

1593년, 찐뚱이 호앙딘아이(黃廷愛), 응우옌흐우리에우(阮有僚) 등 부를 이끌고 청림을 양면에서 협격하고, 막낀찌와 막 왕조의 많은 종실 및 대신들을 포로로 잡았다. 찐뚱은 초진(草津) 일대에서 막낀지를 참수했고, 탕롱으로 보내 민중에게 이를 보였다. 막 왕조의 유신인 막응옥리엔이 막낀찌의 동생인 돈후왕(敦厚王) 막낀꿍을 찾아내 문란주(文蘭州)에서 황제로 옹립했다.

3. 가족

막낀찌의 황후는 1590년에 충의장홍군공(忠義將弘郡公)의 집에 숨었다가 훗날 일이 밝혀져서 둘 다 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