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7 14:21:56

민영달

조선귀족 작위 거부자 8인
<rowcolor=#dca600> 김석진 민영달 유길준 윤용구
<rowcolor=#dca600> 조경호 조정구 한규설 홍순형
※ 김석진, 민영달, 조정구는 독립유공자이다.
조선귀족 작위 거부자 8인
<colbgcolor=#29176e><colcolor=#ffde09> 조선 내무아문 대신
민영달
閔泳達
파일:민영달.jpg
이름 <colbgcolor=#fff,#222>민영달(閔泳達)
출생 1859년( 철종 10)
사망 1924년
본관 여흥 민씨
우당(藕堂)
주요 경력 조선 공조판서
조선 예조판서
조선 의정부 우참찬
조선 호조판서
조선 내무아문 대신
조선 궁내부 특진관
대한제국 궁내부 특진관
서훈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조선, 대한제국의 관료. 본관은 여흥. 아버지는 군수 민관호(閔觀鎬)이다.

2. 생애

고종 때 공조, 예조, 호조 판서, 의정부 우참찬 등을 지냈다. 1894년 김홍집 내각에서 내무아문 대신을 지냈다.

1910년 경술국치 일본에서 조선귀족 남작 작위를 수여했으나 거부하였다.

1918년 미국 제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하자 이에 영향을 받은 독립운동가 이회영(李會榮)이 동지들과 의논하여 고종의 해외 망명을 시도하였다. 이회영은 차남 이규학(李圭鶴)을 고종의 조카딸인 조계진(趙季珍)[1]과 결혼시키고 이를 기화로 궁궐에 출입하였다. 고종에게 망명 의사를 타진하고 승낙까지 받았으며 이때 민영달이 망명자금으로 5만 원을 지원하였다. 베이징에 있던 이회영의 동생 이시영(李時榮)은 고종이 거처할 행궁을 준비하고 있던 차였다. 그러나 1919년 1월 고종이 갑작스럽게 죽음으로 인하여 망명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1924년 사망하였다. 창덕궁 이왕이 그의 상(喪)에 일금 100원을 하사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1] 흥선대원군의 외손녀로서 풍양 조씨 조정구의 딸이다. 조정구는 종1품 판돈녕사사까지 지낸 고위관료로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일제가 조선귀족 남작 작위를 수여하자 민영달과 마찬가지로 거부하였다. 고종이 승하하자 임시정부 평정관을 지내는 등 독립운동에 투신하였고 2019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