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오네소스 해전 Battle of Myonessus |
||
시기 | 기원전 190년 9월 | |
장소 | 소아시아 미오네소스 앞바다 | |
교전국 |
로마 공화국 로도스 |
셀레우코스 제국 |
지휘관 |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레길루스 에우다모스 |
폴리크세니다스 |
병력 |
로마 함선 58척 로도스 함선 22척 |
89척 |
피해 | 침몰 2척, 나포 1척 | 침몰 29척, 나포 13척 |
결과 | 로마 공화국- 로도스 연합 해군의 승리. | |
영향 | 로마 공화국의 에게 해 해상권 완전 장악, |
[clearfix]
1. 개요
로마-셀레우코스 전쟁 시기인 기원전 190년 9월, 로마 공화국- 로도스 연합 해군이 셀레우코스 제국 해군을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에게 해 해상권을 완전히 장악한 해전.2. 상세
기원전 190년 8월, 에페수스에 고립된 폴리크세니다스의 셀레우코스 해군을 구하기 위해 북상하던 한니발 바르카의 셀레우코스 해군은 에우리메돈 해전에서 로도스 해군과 격돌해 큰 피해를 입고 철수했다. 이리하여 한니발의 구원을 조기에 받지 못하게 된 폴리크세니다스는 소아시아의 많은 폴리스들이 로마 편으로 꾸준히 가담하는 모습에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 그러던 기원전 190년 9월, 로마 함대 사령관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레길루스가 로마군이 소아시아로 진입하는 것을 돕기 위해 함대 일부를 헬레스폰토스 해협으로 파견했다. 여기에 로도스 함대도 수리가 필요한 함선들을 본국에 보내면서, 에페수스 봉쇄를 담당하는 적 함대 숫자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폴리크세니다스는 이 기회에 적의 봉쇄를 돌파하기로 마음먹었다.당시 폴리크세니다스가 지휘한 셀레우코스 전함은 89척인데 비해, 봉쇄를 수행하는 로마 전함은 58척, 로도스 함선은 22척이었다. 수적으로는 셀레우코스 측이 다소 유리했지만, 선원들의 숙련도는 적군보다 많이 부족했다. 따라서 그는 정면으로 해전을 벌이기보다는 기습을 선호했다. 그러던 중 레길루스가 로마 함대에 식량을 제공하는 키오스를 공격하는 15척의 소형선들을 쫓아냈다. 이들은 가까스로 미오네소스로 탈출한 뒤 폴리크세니다스에게 적 함대가 셀레우코스 측으로 붙은 테오스 섬을 징벌하려 한다고 전했다. 이에 폴리크세니다스는 테오스 섬 부근의 은신처에 매복했다가 적 함대가 테오스의 좁은 북쪽 항구로 들어가려 할 때 기습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한 농민이 레길루스를 찾아와서 셀레우코스 해군이 테오스 근처 바다에 숨어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레길루스는 더 안전한 남쪽 항구로 빠르게 항해했다. 폴리크세니다스는 적이 예상과는 달리 남쪽 항구로 이동하자 즉시 추격했다. 로마-로도스 연합 함대는 미오네소스와 코리코스 반도 사이로 이동하는 동안 적의 맹렬한 추격을 받아 잠시 혼란스러워 했다. 하지만 전투 대형을 갖춘 함대들이 버티는 사이, 다른 함대들이 해협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 후 로마 함대의 오른쪽 측면이 셀레우코스 함대의 우측면을 공격하자, 수적으로 우월한 셀레우코스 함대들이 이들을 에워싸려 했다. 당시 로도스 편대는 좌측면에 포진했고 적 함대와의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아직 교전하지 않았다. 에우다모스는 로마의 우측 편대가 위급해진 것을 보고 부하들에게 연합 함대의 중앙 편대 후방을 지나쳐서 로마 우익 편대를 지원하라고 명령했다. 이로 인해 셀레우코스 우익 편대는 로도스 함대의 역습에 직면했다. 로도스 선원들은 불에 잘 타는 기름을 담은 통에 불을 질러서 적선에 내던지는 방식으로 공격해 셀레우코스 선원들에게 공포를 퍼트려서 물러서게 만들었다. 한편, 로마의 중앙 편대는 셀레우코스 중앙 편대를 성공적으로 돌파한 뒤 셀레우코스의 우익 편대 후방을 요격했다. 폴리크세니다스는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자 아직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던 셀레우코스 좌익 편대만 이끌고 철수했고, 나머지 함대는 궤멸되었다.
셀레우코스 함대는 미오네소스 해전에서 29척이 침몰하고 13척이 나포되는 참사를 겪었다. 반면 로마-로도스 연합 함대의 손실은 침몰 2척, 나포 1척에 불과했다. 폴리크세니다스는 남은 47척을 에페수스에 정박시켰고, 로마 해군은 에페수스 앞바다에서 무력 시위를 벌인 뒤 키오스로 가서 손상된 선박들을 수리했다. 이후 레길루스는 스키피오 집정관에게 에게 해를 완벽하게 통제했다는 소식을 전했고, 30척의 로마 선박과 로도스 함대를 헬레스폰토스 해협으로 보내 로마군을 수송하게 했다. 그리고 나머지 로도스 함대는 카스텔로리조에서 한니발의 함대를 봉쇄했고, 레굴루스의 남은 로마 함대는 포카이아를 공격해 공략에 성공했다.
미오네소스 해전의 승리로 에게 해의 패권이 로마에게 완전히 넘어간 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는 아이톨리아 동맹과 6개월 휴전 협약을 체결한 뒤 로마군을 레길루스가 보낸 함대에 실은 뒤 소아시아로 이동했다. 안티오코스 3세는 갈수록 불리해지는 전황을 타개하기 위해 비티니아 왕국에 동맹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에 로마군에 사절을 보내 트라키아에서 철수하고 이오니아와 아이올리스에서 철수하며, 로마가 전쟁을 치르는 데 들인 비용의 절반을 지불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루키우스 스키피오는 타우루스 산맥까지의 모든 소아시아 영역을 포기하고 배상금을 지불하라고 요구했다. 안티오코스 3세는 이 요구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여겨 제국 전역에서 군대를 최대한 끌어모은 뒤 기원전 190년 12월 마그네시아 전투를 감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