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12-03 23:15:21

무영문(풍종호)



1. 개요2. 무공3. 구성원

1. 개요

"아직까지 남은 자가 있다니, 무영문의 역량도 소문 이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야 귀문의 신투가 세운 문파니 당연하겠지. 대를 이었던 무영객의 이름으로 더 알려진 탓에 무영문이라고 불리기는 했지만······."
"귀문신투의 실력이 제자인 무영객만 못하지 않습니까? 얼핏 그렇게 들었는 듯한데요."
"쳇, 명성만 덜했지. 실력은 무영객이 사부만 못했어. 분명히 그 친구 무영객의 솜씨는 보는 사람이 감탄할 지경이었지. 그러나 귀문신투의 재주는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보기가 힘든 것이었어."[1]
풍종호의 무협소설 『 지존록(至尊錄)』에서 독보적인 신법으로 천하를 누벼 귀문신투(鬼門神偸)라 불린 이로부터 시작된 문파이다. 제자인 무영객(無影客)이 더욱 유명하여 무영문(無影門)이라 불린다.

무영문은 100여 년 전의 절대자라는 지존마(至尊魔)가 남긴 절대지존환(絶對至尊環)과 관련하여 깊은 원한으로 얼룩져 있으며, 그 시작이 무영객이 지존환을 얻고자 50여 명을 참살한 일이다. 무영객은 스승에게 물려받은 절기의 살상력은 약화하는 대신 호신력은 강화할 정도로 조심스럽고 신중한 성품이었다. 그런고로 그의 제자들인 귀영자(鬼影子)와 귀혼도(鬼魂刀) 풍영휘는 무영객의 성향으로는 절대 그런 사달을 일으킬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영객은 결국 비명횡사(非命橫死), 두 제자도 보물을 노리는 자들로부터 쫓겨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귀영자는 쫓기는 상황 속에서도 사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지존환을 계속하여 추적한다. 그리하여 사제인 풍영휘와 헤어진 지 15년 만에 지존환을 손에 넣는데, 그 상황은 음모의 덫이었다. 귀영자가 지존환을 얻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퍼지면서 생명에 위협을 느낀 그는 마지못해 송가촌으로 풍영휘를 찾아간다. 이로 인해 그를 쫓아온 무림인들이 송가촌으로 들이닥쳐 무고한 양민들까지 모조리 살해하는 대참사가 일어난다. 이는 섭혼루(攝魂樓)의 잔악한 일당들과 미망산(迷妄散)에 당한 무림인들의 잔인한 행동 때문이다. 끝내 귀영자와 풍영휘는 죽고, 풍현 풍기만이 살아남는다.

이후 풍현이 제세칠성(濟世七聖)의 유적에 들어가 귀문신투의 유세비전을 이어받음으로써 다시금 귀문을 넘나들었다는 신투의 진정한 기예가 세상에 드러난다.

2. 무공

  • 음부귀장신법(陰府歸藏身法): 일찍이 은형술(隱形術)에도 일가를 이뤘던 귀문신투는 은형술과 신법을 결합하여 음부귀장신법을 창안한다. 빠르기도 빠르나, 투명경(透明勁)이라는 내가경력(內家勁力)이 발휘되면 다른 사람은 거품이나 물방울을 통해 쳐다보는 듯이 시전자를 희미하게 볼 수 있을 뿐이다. 나아가 일정 수준 이상이면 아예 눈에 띄지 않기에 귀문신투의 성명절기가 된다.
  • 무상장(無相掌): 귀문신투가 여기저기서 빌려와 멋대로 끼워 맞춘 장법이다. 무영객은 아무 제한 없는 음부귀장신법이 무영문의 심법과 동떨어져 잘못 전해질까 우려해 심법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렀는가를 확인할 수 있게 무상장을 음부귀장신법에 통합한다. 이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시야와 감각을 왜곡시켜 숨는 음부귀장신법이 동시에 시전자의 시야와 감각도 왜곡하는 심각한 단점이 생긴다. 무영객은 이를 억지로 무상장으로 보완하도록 해놓는다. 즉, 음부귀장신법이 펼쳐지는 동안 무상장이 눈과 귀를 비롯한 감각을 대신할 수 있게끔 한 것이다. 그렇기에 음부귀장신법의 성취를 무상장의 경지가 따르지 못하면 볼 수 있는 궤도가 한정되고 만다.[2]
  • 귀혼도법(鬼魂刀法): 사파(邪派)의 전승 중에서도 겨우 상승(上乘)의 경지에 드는 데 불과하여 그리 높이 평가받지 못하는 추혼도(追魂刀)를 기초 삼아서 귀문신투가 고안한다.

3. 구성원

  • 귀문신투(鬼門神偸)
    • {{{#!folding 무영객(無影客) ☜
【귀문신투가 대과를 보려던 유생이었던 만큼 제자도 그런 유한 성향의 무영객을 받아들인다. 그래도 재능은 뛰어났는지 단마애에서 천랑칠살(天狼七煞)을 무찔러 천하제일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런데 얼마 안가 지존환을 얻고자 50여 명을 참살하는 사건을 일으킨 흉수로 지목되었고, 그를 상대하기 위한 무인들이 모여 검맹(劍盟)이 생겨나 1달 만에 죽고 만다.[3]】}}}
  • {{{#!folding 귀영자(鬼影子) ☜
【무영객의 첫째 제자이다. 무영문의 기예 중 핵심인 음부귀장신법(陰府歸藏身法)과 무상장(無相掌)을 제대로 익혀서 귀영자라 불린다. 그가 언제 연혼전주(練魂殿主)에게 당했는지 알 수 없지만, 송가촌에서 순간 조종당해 눈빛으로 풍현에게 음부십마해(陰府十魔解) 중 유혼(幽魂)의 업화(業火)를 심는다. 그러고는 무예실록(武藝實錄)과 무영객의 일을 추적한 탐흔기(探痕記) 그리고 지존환을 풍현의 품 속에 넣어준 뒤 죽은 금풍검객의 시체와 맞바꿔 살아남을 수 있게 해준다.】}}}
  • 용비천
  • {{{#!folding 귀혼도(鬼魂刀) 풍영휘 ☜
【무영객의 둘째 제자이다. 무영객은 제자들을 가르칠 충분을 시간을 갖지 못해 풍영휘도 스승으로부터 제대로 배움을 얻지 못한다. 귀영자가 음부귀장신법을 집중적으로 전수받았다면, 풍영휘는 음부귀장신법은 기초만 익히면서 귀혼도법(鬼魂刀法)을 중심으로 배웠다. 그는 스승의 죽음 이후 쫓기면서도 매화검(梅花劍)과 결혼해 도피 생활을 한다. 그 와중에 얻은 두 아이가 풍현과 풍기이다. 그렇지만 잠깐의 행복이었을 뿐, 풍기를 낳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추적자에게 걸려 아내를 잃고 만다. 죽고 싶었는데도 두 아들 때문에 버틴 그는 송가촌에 스며들어 글선생으로 지내며, 풍기를 후계자로 선택해 무공을 전수한다.[4]】}}}
[1] 『지존록』에서 풍현이 칠성의 장보도를 훔치는 모습을 본 화풍렬 철무위의 대화 중에서 발췌. [2] 제자가 편히 익혀 일찌감치 좋지 못한 일에 눈뜨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고······. [3] 참고로 소설의 주인공인 풍현의 생각에 따라 무영객이 50여 명을 참살한 사건에 전(殿)과 섭혼루의 음모가 깔려 있어 누명을 썼다는 일반적인 정설과는 달리 무영객이 실제 일으킨 사건일 수도 있다. 무적신마(無敵神魔)가 개봉 전 찾아낸 3개의 지존환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개봉이 되었다고 얘기하므로, 무영객이 지존환을 개봉해 마혈(魔血)로 인하여 거의 미쳐 있어서 50여 명을 참살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더불어 이런 무영객을 상대하기 위한 검맹에 검왕(劍王)이 연관이 있다면, 검왕의 정대한 성격을 고려했을 때 무영객이 일으킨 사건이 누명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할 수가 없다. [4] 아내에 대한 미안함으로 풍현은 무림이 아닌 양민으로 살아가게 하려고 무공을 가르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