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4년 ~ 1609년
1. 소개
오스만 제국의 제독이자 해적. 본명은 전해지지 않는다.2. 생애
알바니아 해안에서 태어나 1546년에 해적인 카리 알리 레이스에게 붙잡혔으며, 해적에게 잡히면서 이슬람 이름인 무라트로 개명해 커세어가 되었으며, 1565년 카리 알리 레이스가 죽은 뒤에 독자적으로 해적활동을 해 남부 이탈리아 해안에서 난파되었다가 지나가는 기독교 범선을 빼앗아 항해를 계속했다.스페인 무역선 3척을 나포해 1척을 바르바리 항구에 팔았으며, 북아프리카 해안에 본거지를 두어 스페인, 이탈리아 선박들을 공격하는 등 지중해의 기독교 국가들의 배를 습격했다. 해적으로서의 악명을 떨쳤는데, 작은 갤리엇의 돛대를 내리게 하면서 다른 갤리선 뒤에 숨어 밧줄에 끌려가는 등 적들을 방심시켰는 책략을 사용했다.
1570년에는 해적으로서 매우 설쳐대 커세어끼리의 분열이 일어나 울루츠 알리보다 선두에 나서서 몰타의 기사단들이 탄 갤리선을 공격했으며, 이 때문에 해군사령관의 임명이 지연되었다. 1574년에는 알제의 술탄에게서 레이스(Reis)에 임명되었으며, 1578년에는 2척의 무장 갤리선으로 본국으로 되돌아가는 시칠리아의 스페인 총독을 생포했다.
1581년에는 툴룽으로 금, 은을 싣고 가는 프랑스 배 3척을 나포했으며, 1586년에는 대서양으로 항해해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의 란사로테 섬을 공격해 몇 주 동안 점령해 몸값을 받아 포로를 석방했다. 1589년에는 몰타의 대형 갤리 선을 노획했으며, 1595년에 메미 아르노 레이스가 오스만 해군사령관을 맡기 위해 알제를 떠나자 오스만 제국의 황제로부터 레이스의 자리에 정식으로 인가받았다.
레이스로 인가받으면서 남부 이탈리아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대규모 공격에 참전했으며, 시칠리아 해안에서 스페인의 시칠리아 전함 3척을 포획하거나 수적으로 우세한 몰타의 갤리 선의 공격을 물리쳤다. 이후 오스만 해군을 지휘하거나 지상군 사령관이 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알바니아의 도시 블로러를 포위하던 도중에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