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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연화경(보물 제1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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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내용3. 보물 제1147-1호4. 보물 제1147-2호5. 보물 제1147-3호

1. 개요

妙法蓮華經. 조선 세조의 부인인 정희왕후 윤씨가 당시 사망한 남편 세조, 아들 예종 의경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1470년에 간행한 왕실판본 불경. 현재 (재)아단문고에 소장 중이며, 대한민국 보물 제1147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세조와 그의 부인인 정희왕후는 조선 왕실 역사상 보기 드문 지극한 금슬로 유명하다. 계유정난 당시 여인의 몸으로 직접 나서 세조에게 갑옷을 입혀주기도 하였고, 세조 역시 연회가 열릴 때마다 부인을 대동해서 다니며 술 몇잔 마셨는지 아내님에게 일일이 보고해가면서 사람들에게 부인 자랑만 늘어놓기로 유명했다. 세조의 양잠업 진흥 사업 당시 직접 잠실의 백성들 앞에서 누에치기를 하는 등 정치일선에 나서 남편의 힘이 되기도 하였고, 남편 역시 다른 조선왕들은 다 들이던 후궁조차 들이지 않으려 했다.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 설민석과 떠나는 역사 여행_알고 보면 다르게 보이는 것들. 인간 세조, 세조의 부인 : 바른 수렴청정의 표본 정희 왕후의 삶

이러한 정희왕후가 세조가 사망한 후 남편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봉선사를 설립하고 예념미타도량참법, 금강경삼가해 등의 여러 불경들을 간행할 때 함께 간행한 불경이다.

조선시대 크게 유행했던 묘법연화경, 즉 법화경 불경을 대표하는 고서적이다.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크게 영향을 끼친 책이며, 이 책을 기반으로 하여 성종 13년(1483)에 찍은 것(보물 제936호)과 성종 19년(1488)에 찍은 것(보물 제950호)들 또한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 역사성과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크다.

세조~성종대 불교문화의 흥성에 대한 연구와 조선 전기의 인쇄술, 왕실불교관련 서지학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산이라 할 수 있으며, 세조와 정희왕후 사이의 사랑관계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다.

3. 보물 제1147-1호

묘법연화경은 줄여서 ‘법화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것을 중요사상으로 하고있다. 천태종의 근본 경전으로 화엄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크게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이 책은 후진(後秦)의 구마라습(鳩摩羅什)이 번역한 법화경 7권 가운데 권3∼4와 권5∼7을 각각 한 책으로 묶은 것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크기는 세로 35.6㎝, 가로 21.6㎝이다. 표지는 나중에 새로 만든 것으로 보이며, 본문에 끊어 읽는 곳을 알려주는 점이 찍혀있는 것이 특징이다.

조선 성종 1년(1470)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 윤씨가 일찍 죽은 둘째 아들 예종과 더불어 세조, 덕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간행한 책이다. 이 책은 판을 새긴 후 처음 찍어낸 것이며, 후에 다시 찍은 책으로는 성종 13년(1483)에 찍은 것(보물 제936호)과 성종 19년(1488)에 찍은 것(보물 제950호) 등이 전하고 있다.

왕실에서 주도하였던 까닭에 당시의 일류 기술자들이 참여하여 판의 새김이 매우 정교하며, 인쇄와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4. 보물 제1147-2호

이 책은 1470년(성종 원년) 4월에 세조의 왕비인 정희대왕대비가 발원하여 돌아가신 세조, 예종, 의경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간행한 묘법연화경 7권 가운데 권 1~2 이다. 이 책은 권돈일, 고말종, 장막동, 우인수, 최금동, 이영산, 최덕산 등 당대의 일류 각수(刻手)들에 의해 이루어져 새김이 매우 정교하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된 법화경은 대부분 계환의 해석이 붙어 있는 것을 사용하였는데, 이때 새긴 법화경은 천도의식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원문만 새긴 것이다. 이와 같은 판본으로 기 지정되어 있는 <묘법연화경 권 제3~4, 5~7> 중 권7 말 김수온 발문에 간행동기 및 간행시기가 밝혀져 있어 왕실불교관련 및 서지학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자료이다.

5. 보물 제1147-3호

본각사 소장본 묘법연화경은 성종 원년(1470)에 정희 태왕대비의 발원으로 판각한 왕실판본이다. 판각의 솜씨와 인출의 상태가 당대 최고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으로 사료된다. 조선전기 왕실판본의 사례로서 간행시기와 동기가 분명하며, 보존상태 또한 양호하고, 전래되는 같은 초인본이 극히 희소하다. 당시의 불교사연구와 출판인쇄사, 특히 왕실판본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국가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