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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 아키라무라 사이리츠(明村濟立) |
이명 | 명재립(明在立) |
출생 | 1919년 9월 26일 |
평안북도
영변군 소림면 원등동 (현 평안북도 영변군 남등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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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95년 11월 19일 |
대구광역시 | |
묘소 | 국립서울현충원 제1충혼당 3층-320실-181호 |
상훈 | 대통령표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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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2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2. 생애
명제립은 1919년 9월 26일 평안북도 영변군 소림면 원등동(현 영변군 남등리)에서 독립유공자인 아버지 명이항의 아들로 태어났다.그는 1933년 협성실업학교 상과에 입학하여 그해 동아일보에서 주최한 학생계몽운동에 명운봉(明雲鳳)·명운학(明雲鶴)·명영호(明永浩) 등과 함께 영변군 계몽대원으로 참여하여 고향 영변군 소림면 원등동 예배당에서 107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글·산술·음악 등의 과목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 뒤 일본으로 유학, 도쿄시 스기나미구 마바시(馬橋)3정목에 거주하면서 니혼대학을 다니다가, 1941년 10월 도쿄에서 일본 제국주의 패망에 대비한 경기도 경성부 및 조선 각 지방에 독립운동 단체 설립, 독립을 위한 민족의식 고취, 민족차별 철폐 등을 역설하는 김규엽(金圭燁)의 주장에 동의하고 이에 대해 협의했다.
그러나 이 일이 발각되는 바람에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1943년 4월 23일 전주지방법원 형사부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출옥하였다.
이후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으며 살다가 8.15 광복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다. 광복 후에는 대구광역시로 거주지를 옮겨 그곳에서 조용히 살다 1995년 11월 1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20년 명제립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그리고 2020년 4월 22일 그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 제1충혼당 3층 320실 181호에 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