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면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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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원래 라틴어의 인둘겐티아(Indulgentia)라는 단어는 교회용어와 상관없이 원래 따로 존재하는 단어로 보통 관대함, 관용 정도의 뜻이다.서구의 언어로는 여전히 '대사'와 그 '현금형 대사와 그 증서'가 구분되지 않는다. ' 대사라는 종교적 행위 자체와 '헌금을 통해 대사가 성립한 것을 증명하는 문서' 모두 영어로는 'indulgence'라고 부른다. 단 (Letter of) Indulgence라 하여 문서를 의미하는 표현을 추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어에서는 '부'라는 접미사를 붙여 간단하게 종교행위와 문서를 구분할 수 있기에 양자를 구분한다.
문제는 '면죄부'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고 있고, '면죄'라는 용어가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 논쟁의 쟁점이 되는 용어인 데에서 시작한다. 본 문서는 해당 문제에 대한 양측의 입장을 정리한다.
2. 면죄부(免罪符)가 맞다
주로 개신교 측의 입장이다.기독교에는 유죄지만 회개하였으므로 그리스도의 희생으로써 죄사함(죄의 사면, 말소)이 있을 뿐, 유죄인 상태로 돈 내고 면벌 및 천국행이란 개념은 없다. 죄의 삯이 사망이라는 것은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있으며 신의 은총이 없는 한 원죄 이래의 죄 있는 상태로는 영원한 사망을 피할 길이 없다. 하느님께서 죄를 사면하여 주신 죄없는 상태가 되어서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다. 구원과 용서는 진심으로 회개한 자의 죄과 자체를 말소하는 것이지 죄는 냅두고 형벌만 피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죄가 있으면 당연히 벌이 있어야 하고, 죄 자체를 사함 받아야 그에 따른 벌이 없다는 것이 기독교 세계의 대원칙이자 정의인데 벌만 면하는 면벌부란 개념은 대놓고 이에 반한다.
보편교회의 고해와 보속은 벌 받기 싫어서 면벌 받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 주님이 내리실 벌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참된 회개의 자세를 갖추기 위해 하여야 하는 것이며, 누가 보편교회의 면죄 폐단에 대해 어떤 변명을 늘어놓든 간에 그저 벌받기 싫어서 면벌받으려 하는 일시적인 후회심으로 하는 거짓 고해와 거짓 보속은 그것이 어디서 누구에 의해서 이루어졌든 간에 사람의 진심을 보시는 하느님 앞에서는 무효하다.
또한 '면죄부'는 일본 근대화 시기에 번역되어 일제강점기에 한국에 그대로 전수된 단어라서 번역과정에서 어떠한 음모론도 없고 한국에서도 관습적으로 사용된 것일 뿐이다. 최근까지 대한민국 교육과정에서 과거에는 면죄부(免罪符)로 쓰였고 현대 16세기 교회사와 관련 없이 일상용어에서 면죄부란 용어가 사용된다. 국립국어원은 면벌부와 면죄부 모두 표제어로 인정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면죄부란 단어가 압도적으로 더 많이 쓰인다. 예로 네이버에서 신문검색에서 면죄부를 치면 4만 2천 건이 검색되나 면벌부의 경우 18건뿐이다. 개신교에서는 역사성 때문에 면죄부 표현을 고수하고 있고, 당사자인 한국 루터교회에서도 당연히 면죄부라고 쓴다. 따라서 언어는 언중이 사용하는 단어가 생명이며 이미 사용하지 않는 단어는 죽은 단어이기 때문에 면벌부는 일부 사전과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는 박제된 말이다. 그러므로 면벌부는 가톨릭교회와 그 지속적인 요구로 변경된 교육과정에서 쓰이는 경우가 전부이다.
역사적으로 당시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이해에 문제가 없었고 앞선 주장 '이미 저지른 죄를 면제해 주는 것이 가능한가를 생각해보자'에서 중세인들은 "죄는 예수 그리스도가 벌은 교회가 면제해준다."로 믿었다. 가톨릭교회에서 주장한 대로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인으로 행세 했기에 역시 중세인들은 교황과 교회가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여겼다.
면죄부 사용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가톨릭 측의 면벌부 단어 사용을 그릇되다 지적하거나 사용하지 말 것을 주장하는 게 아니며 중세시절 판매된 금전 대가의 문서와 현대 국어에서 면책의 의미로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가톨릭교회의 대사제도와 같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결국 면죄부는 사용하면 안 되고 면벌부만 옳다고 여겨 강제수정 또는 사용 금지 권고는 지나친 행위이며 이미 많이 사용되는 면죄부 단어 사용을 거부하려면 면벌부와 면죄부 문서를 분리하면 된다.
애초에 가톨릭교회에서 면벌부를 언급한 것은 면죄부라는 잘못된 용어를 버리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면벌부라는 표현이 더 낫다는 의미에서 말한 것 뿐이다. 사실 그냥 가톨릭교회 내에서 쓰는 '대사부'를 쓰면 되지 정확한 의미도 담지 못하는 면벌부라는 표현을 굳이 쓸 필요가 없다.
3. 면벌부(免罰符)가 맞다
주로 가톨릭교회 및 이를 받아들여 역사적 맥락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자하는 역사교육계의 입장이다.가톨릭교회에서는 면죄부는 일제강점기 '대사'에 대한 악의적인 오역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고 '면죄부'를 '면벌부'로 수정하도록 요구해왔다. 현재 교육과정에선 가톨릭교회의 꾸준한 수정 요구로 2003년 8월 7차 교육과정 개편 때 내놓은 편수자료에는 면벌부로 표현하게 되어있다. 여담으로 현재 EBS 세계사 교재( 수능특강 등)에서는 기존의 '면죄부'가 아닌 '면벌부'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한국 천주교에서는 공식적으로는 대사(大赦) 혹은 대사령으로 번역한다. 그 형태는 초대 교회 당시 속죄의 기간을 단축시켜 주는 것에서 찾아 볼 수 있으나, 지금과 같은 형태의 대사는 십자군 전쟁과 흑사병 당시의 교황청의 대규모 대사가 발행의 시초로 추정된다.
학술적으로 보자면 근대 국어의 용법에서 '죄'라는 단어가 '벌'이라는 단어와 동일한 의미를 갖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아직도 노인들은 너 그러다 죄 받는다라는 말을 쓰고, "죄를 준다"라는 표현이 나오는 텍스트도 이따금씩 보이는데 바로 이 경우다. 게다가 근대 국어는 물론이고 현대 국어에서도 '죄를 용서해준다'는 표현은 '벌을 용서해준다'라는 표현과 구분되지 않고 쓰인다. 면죄부라는 용어가 면벌부로 개정되고 나서도, 대부분의 교사들과 학원 강사들은 두 용어에 대해서 '그거나 그거나' 정도로 인식했다. 때문에 서구의 단어에 대한 번역이 필요했던 구한말, 강점기에 이루어진 번역이라면 이 자체를 덜 올바르다고 하기 어렵다. 다만 현대 국어에서는 죄와 벌의 차이가 확연하고, 가톨릭교회에서는 '죄의 용서'와 '벌의 용서'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으므로 이를 감안하여 번역이 변화한 것이다.
아래의 가톨릭교회의 입장 문단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개신교 교회의 입장과 반대로 가톨릭 교회가 죄와 벌의 개념을 구분하는 교리를 채택한 것은 매우 현실적인 이유에서였다. 당장에 현대에조차 "내가 회개해서 하나님에게 죄를 용서 받았으니 괜찮다"는 식으로 뻔뻔하게 구는 사람은 발에 채일 정도로 많고, 고대에는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았다. '세례를 받으면 죄를 용서받는다'는 교리 때문에 세례를 주술적인 무언가로 이해하고(...) 죽기 직전에야 세례를 받으려고 한 로마인들은 무척이나 흔했다. 그 유명한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도 세례는 죽기 직전에야 받았다. 하지만 중세가 지나서 유아세례도 흔해지고, 대부분의 유럽인들이 기독교인이 되자 저런 꼼수가 안 통하게 된다. 그렇다고 세례 받은 사람들이 딱히 성인군자는 아닌지라 죄는 계속 생겨났고, '세례 받았으니까 천국감' 이라는 식의 교리로는 신자들이 죄를 짓는데에 억제력이 될 수 없었고, 때문에 '죄는 하느님이 용서해주지만 벌은 남는다'라는 교리를 더해서 신자들의 행동을 억제하려고 한 것.
상 문단처럼 개신교에서 강조하는 죄와 벌은 한 세트 교리는 가톨릭교회가 헌금형 대사를 남발하는 현실 속에서 헌금형 대사를 논파하기 위해 새로 갱신한 성경 해석인 것이다.
따라서 가톨릭교회뿐만 아니라 교육계에서도 면벌부가 맞다고 하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성경에서는 죄의 사면과 벌은 별개로 내려지는 케이스가 존재한다. 다윗왕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고 우리아를 전장터에서 죽게 한 경우가 그러한 경우인데 선지자를 통한 신의 책망에 다윗은 즉각적으로 회개하고 사죄를 받았지만 그 죄의 댓가로 밧세바와의 관계에서 낳은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죽게되었으며 다윗의 가문에서 피가 끊이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