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기원전 362년 테베, 아카디아, 보이오티아 동맹과 스파르타, 아테네, 만티네아 동맹이 맞붙은 전투. 테베의 전성기를 이끈 명장 에파미논다스가 이 전투에서 전사했다.2. 배경
기원전 371년, 에파미논다스가 지휘하는 테베군은 스파르타군을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스파르타 국왕 클레옴브로투스 1세는 전사했고 스파르타군 12,000명 중 4천명 이상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스파르타 본국에서는 이 비보를 접하자마자 잔여군을 구출하기 위해 구원병을 파견하였지만, 레욱트라 전투에서 살아남은 스파르타군은 휴전에 동의하고 귀국했다. 스파르타의 법률에 따른다면 국왕이 전사하게 내버려두고 도망친 장병들을 처형해야 했지만, 인구 손실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정부는 법을 집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이후 펠로폰네소스 반도 곳곳에서 스파르타에 대항하는 봉기가 일어났다. 아르고스에서는 친스파르타 성향의 부유한 시민 1,200명이 피살되고 민주정이 세워졌다. 만티네아도 스파르타를 상대로 독립을 선언했다. 스파르타의 새 국왕으로 즉위한 아게실라오스 2세는 설득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타게아에서는 친 스파르타 성향의 과두정 지지자들과 반스파르타 성향의 민주주의자들간의 내전이 벌어졌다.
이렇듯 스파르타의 세력이 날로 쇠약해지고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도시국가들이 혼란에 휩싸인 틈을 타, 에파미논다스는 테베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패권을 구축하려 했다. 테베군은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진압한 뒤, 펠로폰네소스 고원의 도시국가 연합인 아르카디아 연합을 설립하여, 스파르타의 영향력을 억제하고 테베의 지배력을 유지했다. 스파르타는 동맹을 약화시키기 위해 아르카디아인과 영토 갈등이 심한 펠로폰네소스 민족인 앨리스인과 연합했다.
기원전 362년경, 아르카디아 연합군은 앨리스에 있는 범그리스 성역인 제우스 신전을 점령했다. 이 일은 거센 반발을 일으켰고, 만티네아가 아르카디아 연합을 탈퇴하고 스파르타와 연합했다. 한편, 아테네는 테베의 영향력이 너무 커지자 경계심을 느끼고 스파르타를 돕기로 했다. 사실 아테네인들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난 후 테베가 스파르타에게 아테네를 파괴하고 거주민들을 노예로 삼으라고 요구했던 걸 기억하고 있었고, 이에 대해 깊은 앙심을 품고 있었다.
아테네는 스파르타를 지원하기 위해 해상을 통해 군대를 파견했다. 이 소식을 접한 에파미논다스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질서를 회복하고 테베의 패권을 다시 확립하기 위해 테베군을 이끌고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진군했다. 이윽고 양 측은 만티네아에서 결전을 벌인다.
3. 양측의 전력
3.1. 테베 - 아카디아 - 보이오티아 동맹군
- 지휘관: 에파미논다스
- 병력: 5만에서 7만(고대 기록), 3만 명(현대 학자들의 추정치)
3.2. 스파르타 - 아테네 - 만티네아 연합군
- 지휘관: 스파르타 국왕 아게실라오스 2세
- 병력: 테베군보다 약간 적은 숫자일 것으로 추정됨.
4. 전투 경과
기원전 362년 7월 4일, 스파르타 연합군과 테베 동맹군은 만티네아 부근에서 조우했다. 그들은 곧바로 전투 대형을 형성했다. 스파르타 연합군의 최우익에는 만티네아인들이 배치되었고, 아카디아, 라세다에모니아인이 우익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앨레스인과 아카이아인이 중앙에 배치되었고, 아테네군은 최좌익에, 스파르타인은 좌익에 배치되었다. 여기에 몇몇 앨레스 기병이 후방에 예비군으로 있었다.이에 맞서는 테베 연합군은 테베인이 좌측면에 배치되어 50개 대열을 형성했다. 테게아인과 아르고스인이 뒤이어 좌익을 형성했고, 에우보니아인, 로키아인, 시키오니아인, 메세니아인, 아이니아인이 중앙에 배치되었고, 테살리아인과 나머지 동맹국 장병들이 우익에 배치되었다. 테베 기병대는 양쪽 측면에 배치되었고, 좌익에 테살리아 기병이 있었다.
에파미논다스는 적에게 자신의 의도를 숨기기 위해 숙영지를 건설하고 야영 준비를 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걸 본 스파르타와 그들의 동맹군은 한낮 식사를 하러 갔다. 이때 테베군이 재빨리 평원을 가로질러 공격했고, 스파르타 연합군은 황급히 전열을 정비하여 반격했다. 먼저 격돌한 이들은 아테네 기병과 테베 기병대였다. 양측 모두 용감하게 싸웠지만, 경보병의 효과적인 지원을 받은 테베 기병대가 점차 상대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결국 아테네 기병대는 전투를 포기하고 퇴각했다. 또한 반대편에서는 보이오티아와 테살리아 기병대가 만티네아 기병대와 격렬하게 맞붙었다.
이후 양측 보병대가 격돌하였고, 에파미논다스가 사전에 편성해둔 테베의 50개 보병 대열이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레욱트라 전투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적군이 좀처럼 밀리지 않았다. 또한 후방에 배치되어 있던 앨레스 기병대는 테베 기병대를 막아서서 후방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했다. 이에 에파미논다스는 친히 신성부대를 이끌고 스파르타인을 향해 돌격했다. 레욱트라 전투로 정예병을 죄다 잃어버렸던 스파르타인들은 신성부대의 압도적인 전투력을 이기지 못하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에파미논다스는 적이 후퇴하는 걸 보고 친히 추격했다. 그러나 너무 서두르는 나머지 최전선에 노출되고 말았다. 이에 스파르타 전사들이 그를 향해 맹공을 가했고, 결국 에파미논다스는 적이 던진 창을 가슴에 맞고 쓰러졌다. 이후 테베인들은 퇴각하는 적을 잠시 추격했다가, 죽어가는 지휘관을 호송하기 위해 추격을 중단했다.
이후 진영으로 후송된 에파미논다스는 군 지휘권을 물려주기 위해 다이판토스와 이올라이다스를 잇달아 불렀지만, 그들 모두 전사했다는 말을 듣자 "이제 테베에는 지휘관이 없구나. 적과 강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얼마 후 그는 숨을 거두었고, 만티네아 전투는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