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5 08:11:41

마우리츠 판나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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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츠
Maurits, Prins van Oranje
파일:School_of_Michiel_Jansz._van_Mierevelt_001.jpg
이름 마우리츠 판오라녀
(Maurits van Oranje)
출생 1567년 11월 14일
신성 로마 제국 나사우 공국 딜렌부르크
사망 1625년 4월 23일 (향년 57세)
네덜란드 공화국 홀란트 백국 헤이그
재위 오라녀
1618년 2월 20일 ~ 1625년 4월 23일
네덜란드 공화국 스타트허우더
1585년 11월 14일 ~ 1625년 4월 23일
아버지 빌럼 1세 판 오라녀
어머니 작센의 아나
형제 아나, 에밀리아
1. 개요2. 생애3. 마우리츠의 선형진4. 여담5.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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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덜란드의 군인, 정치가이다.

2. 생애

빌럼 1세의 둘째 아들로 아버지가 죽은 후 총독직을 승계받고 저지대의 다른 주들을 이끌어 독립 전쟁을 수행해 나갔다. 이복형이 아니라 마우리츠가 총독직을 승계한 이유는 형이 친스페인파로 스페인에 살고 있었기 때문. 혈통에 따라 자동으로 상속되는 오라녀 공작위는 이복형이 1618년 죽은 뒤에야 계승받았다.

스페인의 테르시오에 맞서기 위해 선형진이라는 진형을 개발하여 스페인과 맞서 성과를 보았지만 전제적인 모습을 보였다. 정적이었던 판올덴바르네벌트를 제거한 후 모든 관직을 자신의 지지자들로만 채워서 왕이나 다를 바 없었다. 스페인 합스부르크와의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와 손을 잡은 후 사망했다. 이복동생인 프레데릭 헨드릭이 그의 뒤를 이었다.

3. 마우리츠의 선형진

네덜란드 독립 전쟁 당시 마우리츠는 네덜란드가 스페인의 보병 대형인 테르시오에 맞서기 위해서는 절대로 같은 테르시오를 구성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로는 수십 년간 싸워오면서 누적된 베테랑이 주축이 된 테르시오 연대들은 전쟁터에서 두어 배에 달하는 적군과도 동등하게 싸울 수 있는 정도였기에 후발 주자인 네덜란드가 이것을 따르기에는 시간도 부족하고 경험도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가 구상해 낸 것이 선형진이라는 독특한 진형으로, 테르시오처럼 파이크 부대 옆에 화승총병이 위치했지만 세부적인 변화를 두었다.

첫째로 고대 로마의 레기온 편제에 착안하여 부대의 규모를 소규모로 더 세분화하여 나누었는데, 부대 정원이 3000명, 중대 1개당 300명인 테르시오와는 달리 정원 1000~1500명에 중대 1개당 150명의 정원으로 개편했다. 이렇게 되자 테르시오처럼 적에게 포위가 될 때 버티기는 조금 힘들어졌지만 보다 적은 병력을 더 넓은 전면에 배치한 결과 화력이 늘어났고 중대 규모를 줄였지만 지휘 인원은 그대로 둔 결과 기동성이 높아지는 등 진형을 효율적으로 효율적인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로 파이크병의 비율을 줄였는데, 그 이유로는 이미 기사의 시대가 끝나고 그 뒤를 이은 퀴레시어는 적은 파이크로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기병 방어 및 대보병 전용인 파이크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화승총의 비울을 대폭 증가시켜 화력에 중점을 두었다. 이는 네덜란드 독립 전쟁의 전역이 습지와 강이 많아 기병의 활동이 제한되고, 또한 총기의 살상력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화승총의 일제 사격을 도입했는데, 파이크가 줄어들면서 기병 방어와 보병의 근접전이 약해진만큼 화력 집중을 중요시했기 때문이었다. 그를 위해 마우리츠는 42개의 동작을 만들어 병사들에게 숙지시켰고 그에 따라 병사들은 사격과 재장전에 능숙해졌다. 가령 사격을 예로 들면 중대장에 구호에 맞춰 첫째 열이 사격하면 열의 맨 뒤로 이동시켜서 공격을 계속하도록 했는데, 그렇게 사격을 계속하면서 점차 후방으로 물러난 것은 테르시오와의 근접전을 회피하는 결과로도 이어졌다.

4. 여담

5.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