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7 21:22:36

리치 제임스

리치 제임스
Richey James
파일:Richey James.jpg
<colbgcolor=#000,#00001b><colcolor=#fff> 본명 리처드 제임스 에드워즈
Richard James Edwards
국적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출생 1967년 12월 22일
웨일즈 블랙우드
실종 1995년 2월 1일 ( 27세)
웨일즈
신체 175cm
소속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1989년 ~ 1995년; 탈퇴)

1. 개요2. 생애3. 실종 사건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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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前 리듬 기타리스트이자 메인 작사가. 활동 당시에는 밴드의 프론트맨으로도 활동했다. 1967년 출생. 1995년 실종. 2008년 사망 간주.[1] 풀네임은 리처드 제임스 에드워즈(Richard James Edwards). 리치 에드워즈(Richey Edwards)로도 알려져 있다.

2. 생애


멤버들보다 두 살 많은, 가장 연장자였다. 원래 차량 운전을 하던 로드매니저였는데 멤버들에게 개성을 인정받아 1989년부터 밴드에 합류하였다. 그래서 데뷔 때까지 기타를 칠 줄 몰랐다. 그래도 단짝인 니키 와이어에게 기타 연주를 배우기 시작해서 1집 활동 시기부터 리듬 기타 역할을 수행하였다.

파일:attachment/uploadfile/msp1993.jpg

멤버들 중 니키 와이어와 사이가 각별하였다. 무대에서도 이 정도로 붙어다닐 정도니...

밴드 내에서 연주력은 떨어질지 몰라도 매우 독특한 자의식의 소유자라 그의 실질적인 역할은 매닉스의 메인 작사가이자 밴드의 마스코트였다. 리치 제임스는 인문학에 바탕을 둔, 지적이면서도 정치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어두운 내용의 가사를 쓰는 밴드의 메인 작사가이자 특유의 불가사의한 아우라와 유창한 말솜씨로 밴드의 프론트맨을 도맡아한 멤버였다. 그가 좋아하는 작가는 알베르 카뮈, 미시마 유키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필립 라킨. [2]

파일:richey edwards 4 real.webp

리치 제임스는 본래 인디 시절부터 지적이면서도 도발적인 발언과 더불어 똘기 넘치는 캐릭터로 유명했지만 그가 일으킨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역시 4 Real 사건일 것이다. 1991년, NME 기자와 인터뷰 중 기자가 쌍팔년도 지나간지가 언제인데 글램록이나 하고 있냐 그리고 니들이 대체 무슨 펑크 정신을 갖고있다는 거냐? 라며 의문을 제기하자 리치 제임스가 갑자기 칼을 꺼내더니 자신의 팔에 그냥 쭉쭉 4 Real(우린 진짜다)라는 글자를 그은 것이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그가 그걸 의외로 빠르게 저질러서 말릴 생각을 못했다고들 한다. 참고로 멤버들은 이 인터뷰를 진행한 기자와 이 사건을 계기로 절친이 되었으며 밴드는 이 사건으로 주목을 받아서 소니 레코드와 계약했다.

"4 Real" 사건으로 인해 영국의 대중들에게 리치 제임스는 똘끼가 넘치는 프론트맨으로서 유명해졌고 이때부터 리치는 미디어에 비춰지는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압박감과 라이브 공연에서의 피로감을 호소하며 계속해서 을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1집 활동 말기에 리치 제임스는 알콜 중독 클리닉에 입원하였다. 그리고 리치 제임스는 클리닉에 입원했던 경험을 살려서 2집에 Roses in the Hospital이라는 곡을 수록한다.

1993년 9월 25일 리치 제임스의 밴드 동료이자 절친인 니키 와이어가 결혼했으며 리치는 2집 투어 도중 일본과 독일 공연 뒷풀이에서 여성 팬들과 얽힌 모종의 사건을 겪었다. 실종 직전의 인터뷰에서 리치 제임스는 2집 투어를"안 좋았던 시기"라고 회고했다.

1993년 12월, 밴드의 매니저였던 필립 홀이 암으로 갑자기 사망하고 리치 제임스는 그웬트의 블랙우드에 있는 부모님의 집에서 카디프의 아파트로 이사를 하며 독립했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리치는 우울증과 신경쇠약 증세가 심해진 나머지 자신의 팔에 담배빵을 하기 시작했다.[3] 이후 3집 The Holy Bible 녹음 도중 대학 시절에 자신과 절친했던 동창이 갑작스럽게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리치 제임스는 큰 충격에 빠진다.

게다가 The Holy Bible 앨범 녹음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즈음인 1994년 4월 23일,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는 방콕에서 공연을 하게되는데 공연이 끝난 후 팬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공연 대기실에 칼을 들고 찾아와서 리치 제임스에게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자해를 해보라는 언행을 한 사건까지 발생한다. 이 일을 겪은 후 리치는 거식 증세까지 보이기 시작했으며 매닉스의 멤버들은 태국 콘서트에서 벌어진 이 사건이 리치 제임스의 정신상태를 악화시킨 트리거가 된 사건이었다고 증언한다.

결국, 3집 The Holy Bible 앨범의 녹음이 끝난 직후인 1994년 7월, 리치 제임스는 이틀 동안 잠적해버린다. 이후 발견된 리치 제임스는 이틀 내내 계속 술을 마시고 자해를 한 모습이었고 당시 그의 몸무게는 겨우 38kg밖에 되지 않았다. 결국 리치 제임스는 그대로 카디프의 Whitchurch 병원에 보내졌다가 정신건강의 회복을 위해 로햄튼에 위치해있는 정신병원 Priory Clinic에 10주간 입원하게 된다. 그래서 The Holy Bible 앨범이 발매하기 이틀전에 열린 1994년 레딩 페스티벌에서 밴드는 3인조로 공연해야만 했다.

리치 제임스는 가을부터 다시 밴드에 복귀하여 멤버들과 같이 투어를 돌기 시작했으며 1994년 12월, Astoria에서 펼쳐진 공연이 리치 제임스가 밴드 멤버들과 함께 오른 마지막 무대였다. 훗날 밴드 멤버들은 당시 리치는 알콜 중독에서 벗어난 상태였지만 여전히 자해 행위를 빈번히 저질렀고 거식증도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회고했다.

3. 실종 사건

1995년 2월 1일 아침 7시 30분 The Holy Bible 미국 프로모션 투어 출발을 앞두고 리치 제임스는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와 함께 묵고있던 호텔에서 체크아웃한 뒤 종적을 감추었다. 조금의 단서라도 있는 곳은 모두 찾아다녔지만 2주 후 경찰이 발견한 것은 투신 자살 장소로 유명한 사우스 글로스터셔의 절벽 앞에 주차된 그의 차뿐이었고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다. 2024년 현재는 리치 제임스가 절벽에서 뛰어내려 투신 자살한 것으로 결론이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실종 직전 통장에서의 인출 흔적 등 정황증거로 보아 잠적하였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오랫동안 멤버들도 그가 죽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리치 제임스는 실종 직전의 인터뷰에서 "자살이라는 단어는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자살을 시도한 적도 없다. 나는 심적으로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은 나를 연약한 내면을 가진 사람으로 볼지도 모르겠지만 실제의 나는 고통을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리치 제임스의 마지막 흔적은 주차된 차안이었는데 일주일 정도 차에서 노숙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리치 제임스의 실종 일지

이후 몇 년간 인터뷰에서 리치 제임스의 이름이 거론되기만 해도 멤버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하니 매닉스의 멤버들이 충격을 얼마나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매닉스 멤버들은 2024년이 된 지금도 라이브 무대에서 세션을 쓰더라도 리치 제임스가 무대에 서있었던 자리는 늘 비워놓으며 리치 제임스 몫의 로열티를 꼬박꼬박 신탁기금에 적립하고 있다. 밴드 멤버이기 이전에 먼저 친구였기 때문에 당연한 행동이라고 멤버들은 말한다.

온갖 기행으로 유명한 영국 락 신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사건이었다.

4. 관련 문서



[1] 자세한 건 후술. [2] 리치 제임스의 실종 전 발매 음반과 이후를 비교하면 여러 모로 매닉스가 가졌던 포스트 모던한 맛이 사라진게 느껴진다. 특히, 니키 와이어의 딱딱하고 직설적인 가사와 비교할수록 그들의 잃어버린 감각이 아쉽게 다가온다. [3] 이에 대하여 리치 제임스는 실종되기 직전의 인터뷰에서 "자해를 할 때면 나는 좀 더 기분이 나아진다. 나를 짜증스럽게 하는 그 모든 일들이 하찮게 느껴지니 말이다. 왜냐하면 자해를 하는 순간에는 고통에만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밖에서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거나 남들에게 내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이기 때문에 자해는 내 유일한 감정의 배출 수단이다. 그리고 일련의 행위들은 매우 논리적으로 전개된다."라고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