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북한의 정치인.2. 생애
1920년 10월 4일, 함경북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1953년 9월, 김일성종합대학 특설학부에 입학, 1955년에 소련 모스크바 대학으로 유학을 다녀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귀국 후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 교원으로 배치, 1958년 과학원 역사연구소 연구사, 1960년 중앙당학교 강좌장 등을 맡았다고 한다.
1978년 10월, 사실상 주불 대사 자리인 주 프랑스 무역대표부 대표로 부임하였으며 1981년 1월, 조선과학자협회 부회장, 7월에 세계인민들과의 련대성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으며 민간 외교업무에 종사하였다. 1985년 8월, 대외문화련락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으며 1986년 2월, 조선로동당 6기 11중전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보선되었다. 이후 북한-가이아나 친선협회 위원장을 겸했으며 10월, 조선반핵평화위원회 위원장에도 임명되었다.
1986년 11월, 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 대외문화련락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상설회의 의원에 선출되었으며 1987년 6월, 조선도시연맹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88년 3월, 조선로동당 6기 13중전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승진, 1988년 4월, 림춘추 장의위원을 지냈다. 이후 대외문화련락위원장 자리를 정준기에게 물려주었다.
1990년 4월,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 1991년 4월, 최고인민회의 9기 2차 회의에서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사무장에 임명되었다. 1991년 5월, 허담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2년 4월, 김일성 팔순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1992년 5월, 상설회의 사무장 자리가 상설회의 서기장으로 개편되면서 유임되었다. 1992년 7월, 방학세 장의위원,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 1996년 2월, 리승기 장의위원, 1996년 9월, 려연구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8년까지 상설회의 서기장으로 재임하다가 1998년, 10기 대의원에서 탈락하였으며 상임위원회로 되돌아온 상설회의 서기장 자리도 김윤혁에게 물려주었다. 병환으로 퇴임한 정준기의 뒤를 이어 다시 대외문화련락위원장이 되었다는 조선신보 보도도 있었으나 공개석상에 거의 나타나진 않았다.
이후 소식이 없다가 2008년 9월, 애국렬사릉에 안장됐다. 조선중앙통신은 "오랜 기간 당과 인민정권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한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사무국장였던 리몽호"라고 그런대로 좋게 말해주었다.
3. 참고문헌
- 통일부 정보분석국, 북한의 주요 인물 자료집 2000(서울: 통일부,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