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24:50

루드 굴리트/클럽 경력

1. 개요2. 데뷔3. 에레디비시
3.1. 1979-80 시즌3.2. 1980-81 시즌3.3. 1981-92 시즌
4. AC 밀란5. UC 삼프도리아6. 첼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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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루드 굴리트의 클럽 경력을 소개하는 문서

2. 데뷔

3. 에레디비시

3.1. 1979-80 시즌

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던 교사였던 수리남인 아버지 조지 굴리트(George Gullit)와 암스테르담에 있는 한 박물관의 관리인이었던 네덜란드인 어머니 리아 딜(Ria Dil) 사이에서 태어난 굴리트는 에레디비시 1979-80 시즌, HFC 하를럼에서 16세의 나이로 데뷔하며 에레디비시 역대 최연소 데뷔 기록을 세웠다.

3.2. 1980-81 시즌

팀은 굴리트가 데뷔한 시즌에 꼴찌를 차지해 2부 리그로 강등되었으나, 굴리트의 활약으로 1980-81 시즌 2부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1시즌 만에 에레디비시로 승격했다.

3.3. 1981-92 시즌

굴리트는 1981-82 시즌에 하를럼을 리그 4위로 올리며 UEFA컵 티켓을 따내는데 기여했는데, 1982-83 시즌 UEFA컵은 HFC 하를럼 역사상 유일한 유럽 클럽 대항전이 되었다. 이때 보여준 활약으로 굴리트는 ' 네덜란드 던컨 에드워즈'라는 별명을 얻었다.

세 시즌 동안 91경기 31골을 넣은 굴리트는 페예노르트 로테르담로 이적하여 요한 크루이프와 함께 뛰면서 1982-83 시즌에 리그 우승과 KNVB컵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외부적으로 인종차별 발언을 듣기도 해서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해 리그 2연패를 이끌고 네덜란드 올해의 축구 선수상도 받았다.

4. AC 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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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UC 삼프도리아(임대)

1993년에 밀란을 떠나 UC 삼프도리아에서 마지막 불꽃을 화려하게 불태웠는데 스벤예란 에릭손 감독의 밑에서 만치니와 주로 투톱으로 나서며 리그 15골 12어시스트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고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차지했다. FC 온라인 와의 인터뷰에서 밝히길 이 삼프도리아 시절이 자신이 가장 잘했던 시절이라고 한다.[1]

5. UC 삼프도리아

이후 잠시 밀란에 복귀했으나 큰 활약은 하지 못했고, 삼프도리아로 이적해 남은 한시즌을 보낸다.

6. 첼시 FC

이후 어린 시절 우상이였던 글렌 호들이 이끌던 첼시로 이적하면서 영국으로 향했다. 이탈리아 무대에서 주로 공격수로 뛰었던 것과 달리 첼시에선 리베로와 홀딩 미드필더로 출전했는데 공격수로 나서는 것보다 미드필더로 뛰는 것이 더 뛰기 편했다고 한다. 첼시는 리그 11위를 기록했지만 굴리트는 혼자 팀을 이끌며 PFA 올해의 팀에 올랐다. 이후 선수 겸 감독을 맡아 FA컵 우승을 차지한 후 감독에 집중하기 위해 은퇴했다.


[1] 실제로 93-94 시즌 굴리트는 신체능력은 유지된 상태에서 기술이 노련해져서 플레이가 더욱 유연했다. 몇몇 세리에 올드팬들은 마라도나와 라이벌을 형성했던 87-88 시즌보다 낫다고 평가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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