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3 07:15:40

로제타 셔우드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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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여담

1. 개요

Rosetta Sherwood Hall.

1865년 9월 19일 ~ 1951년

미국의 의사. 미국의 개신교 감리회 소속 의료 선교사이며 교육자이기도 하다.

2. 생애

1865년 출생하여 1889년 3월 펜실베이니아 여자의과대학[1]을 졸업하였고 미국 감리교 여성 해외선교회(WFMS)에 의해 1890년 조선으로 파견 되었다.
조선으로 파송된 후 처음으로 맡은 임무는 조선 최초의 여성병원인 ' 보구녀관(현 이화여자대학교 의료원)'의 2대 책임자 역할이었다. 전임 하워드 여사가 격무로 인해 건강상을 해쳐 귀국하게 되자 로제타 셔우드가 대신하게 된 것이다. 국내 선교중에 캐나다인 선교사 윌리엄 홀과 결혼하여 셔우드 홀을 낳았다.

1894년 11월 청일전쟁 당시 평양으로 의료봉사를 하다가 남편 윌리엄 홀이 전염병에 걸려 사별하게 된다.

이후 로제타 홀은 미국에 일시 귀국하여 조선의 선교 자금을 모금하고 다시 조선에 돌아와 여성 전문 치료시설인 광혜여원을 평양에 개원하였고, 국내 첫 시각장애인 학교인 평양여맹학교를 설립한 뒤 한글 기반 점자를 최초로 개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둘째 딸 이디스를 이질로 잃었다.

1921년에는 인천에 가서 인천 최초의 여성병원인 제물포부인병원(현 인천기독병원)을 세우기도 했으며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인 조선의학강습소를 개설하여 박에스더와 같은 여의사 양성에도 힘썼다.

1934년 미국으로 돌아갔고 감리회 선교사들의 은퇴 양로원에서 여생을 마쳤다. 1951년 사망 직전 유언으로 남편과 딸이 묻혀 있는 한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면서 현재 유해는 한국에 잠들어 있다.

3. 여담


로제타 셔우드 홀 말고도 아들 셔우드 홀과 며느리 매리언도 조선 결핵 퇴치에 힘쓰는 등 2대에 걸쳐 조선에 의료봉사활동을 하였고 1991년 이들 부부도 양화진 묘역에 묻혔다.

2021년 인천 기독병원의 전신 인천 부인 병원의 설립 100주년 기념으로 인천 기독 병원 원목실 주도로 인천광역시 중구 로제타 홀 기념관을 설립했다.
[1] 현 미국 필라델피아 드렉셀 대학교 의과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