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세기경 세워진 마리드 성채
마리드 성채에서 내려다 본 옛 도시 유적과 오마르 모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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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랍어: دُومَة ٱلْجَنْدَل영어: Dumat al-Jandal
사우디아라비아 북부의 도시. 사카카에서 서남쪽으로 30km 떨어진 알 자우프 (ٱلْجَوْف) 오아시스에 위치한다. 인구는 5만명이다. 과거 레반트 및 이라크와 히자즈 및 네지드를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로 번영하였고, 당시 유적이 잘 남아있어 사우디의 대표적인 유적지 중 하나이다. 지명인 두마투잔달은 '돌의 두마'란 뜻이고, 자우프는 저지대라는 뜻이다. 구약 이사야서에서는 두마로 나온다. 사우디에서는 드물게도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초기 이슬람 역사에서도 중요한 도시였다. 또한 시타델인 마리드 성채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유명했다. 2008년부터 발굴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2. 역사
고대에는 데단 ( 알 울라), 데마 ( 타이마), 미디안 (알 바다아)와 함께 사우디 북부의 중심지 중 하나인 두마였다. 기원전 10세기 경부터 도시가 있었고, 기원전 845년 아시리아 측 아카드어 기록에서 아랍계 케다르 (키드리) 왕국의 수도 아두마투라 기록되었다. 고대의 두마에서는 자비베, 삼시, 타부아, 테엘후누 등의 여왕들이 통치하였다 한다. 후자는 이슈타르와 연관된 풍요의 여신 아타르사마인의 제사장이었다. 두마는 이슈타르 신앙의 주요 거점 중 하나로써 그 신전이 있었고, 매년 소년을 제물로써 제단 아래에 묻었다고 한다. 기원전후 무렵 두마는 나바테아의 지배 하에 번영하였고, 현존하는 사우디 최고의 성채 중 하나인 마리드 성이 세워졌다. 서기 106년 나바테아를 로마 제국이 병합하며 두마 역시 로마령이 되었다.그후 로마 제국의 동남쪽 국경인 리메스 아라비쿠스의 최전방을 담당하던 두마는 269년 팔미라 제국의 제노비아 여왕에게 점령되었으나 마리드 성채만은 끝까지 함락되지 않았다. 이에 그녀는 마리드가 반란을 일으켰다 푸념한 후 회군했다고 전해진다. 5세기 들어 로마의 지배력이 약화디자 두마는 네지드에 세워진 킨다 왕국 령이 되어 그 수도들 중 하나로 기능하였다. 5-6세기 두마는 바누 칼브의 거점 도시로써 큰 시장이 섰고, 노예 거래와 매춘이 성행했다. 또한 지배 계급은 동로마 제국과 교류하며 기독교로 개종했음에도 여전히 다신교 신앙이 성행하였다. 7세기 이슬람 태동기에 메디나에서 15일 거리였고 그와 다마스쿠스의 중간 지점이던 두마는 626년 7월 무함마드의 공격을 받았다.
630년 10월에는 칼리드 이븐 알 왈리드가 공격하여 마침내 복속시켰다. 후자는 631년 4월 재차 두마로 원정하여 현지인들이 숭배하던 우상 왓드를 파괴하였고, 몇년 후 칼리파 우마르는 기존 교회를 모스크로 전환하였다. (오마르 모스크) 다만 해당 칼리파 우마르가 우마르 이븐 알 카탑인지 우마이야 왕조의 우마르 2세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그외에 두마에 정착한 바니 우마르 부족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릿다 전쟁 후 633년 완전히 이슬람 제국에 편입된 두마는 북부 아라비아의 중요한 오아시스 무역 도시였고, 1차 피트나 당시 알리와 무아위야 1세의 대리인들이 두마에서 협상을 벌이기도 하였다. 1853년 하일의 아미르 탈랄 이븐 라시드가 두마를 공격, 2문의 대포로 마리드 성채를 포격하여 성벽이 일부 파손되었다. 1909년에는 나와프 이븐 샤알란이 이끄는 사우디 군이 무려 10개월간 포위한 끝에 자발 샴마르로부터 두마를 점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