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20:45

두기(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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杜祺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정사 삼국지3. 삼국지연의4.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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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국시대 촉한의 인물로 형주 남양군 사람.

2. 정사 삼국지

유비 익주를 평정할 때 염부교위라는 직책을 두어 소금의 이익을 관리하자 교위 왕련이 두기를 전조도위로 임명했다.

두기는 군수, 감군, 대장군 사마를 역임했으며, 제갈량이 많은 무장들과 문관들을 모아서 이엄을 탄핵하는 상소문을 올릴 때 그 이름을 올렸고 이 때 벼슬은 행참군 무략중랑장이었다.

244년 흥세 전투 참군으로 참전했고 이때 왕평이 두기는 유민과 함께 먼저 보내 흥세산을 점거하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으며, 여예와는 친밀한 사이로 당시에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3. 삼국지연의

출사표에 언급된 장수들 중의 한 사람으로 나온다.

4. 미디어 믹스

진삼국무쌍 6에서는 토벌전에서 조상이 이끄는 조위군이 왕평이 있는 서쪽의 군량고를 공격했다가 본진을 공격당하면서 조상이 위기를 맞는데, 위군에서 본진을 구한 후에 조상의 탈출을 도우면서 남동쪽으로 도주할 때 북동쪽의 성에서 유민, 유은, 왕림 등과 함께 촉한군의 원군으로 등장한다.

진삼국무쌍 7에서 흥세산의 전투에서 유민과 함께 조상이 군사를 이끌고 나간 틈을 타서 조위군의 본진을 공격하며, 조상이 퇴로를 차단돼서 포위되자 북쪽에서 공격하는 역할을 맡는다.

삼국전투기에서는 낙곡 전투 (2)에서 처음 등장. 이름 때문에 '천재소년 두기'의 두기 하우저로 패러디 되었다. 낙곡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조위에서 대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왕평이 의견을 말해 보라 하자 섣불리 어느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가는 다른 쪽에서의 공격에 대처하지 못할 수 있으니 낙성과 한성을 방패삼아 평지인 남정에서 농성하며 버티자고 주장했다. 왕평이 적의 대군을 평지로 들인다면 반격의 여지가 없을 거라고 반대하자 성도에서 지원이 올 때까지 농성을 하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으며, 왕평은 두 달은 버텨야 지원을 기대할 수 있을 텐데 버티지 못한다면 한중이 바로 적의 손아귀로 떨어질 거라며 다시금 이에 반대했다.

그리고 왕평이 낙곡을 막고자 산으로 가려 했지만 두기 등의 수하는 끝까지 말을 듣지 않아서 결국 왕평과 유민만이 낙곡으로 향한 것으로 묘사된다.[1]


[1] 왕평은 이 꼬라지를 보고 유민에게 내가 그 동안 너무 민주적으로 대했었냐(...)며 독자와 함께 어이없어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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