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무어스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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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FC 회장 · 구단주 | ||||
노엘 화이트 (1990~19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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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무어스 (1991~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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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힉스 &
조지 질레트 주니어 (2007~2010) |
잉글랜드의 축구경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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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데이비드 무어스 David Moores |
본명 |
데이비드 리처드 무어스 (David Richard Moores) |
출생 |
1946년
3월 15일 영국 잉글랜드 리버풀 |
사망 |
2022년
7월 22일 (향년 76세) 영국 잉글랜드 리버풀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축구 경영인 |
배우자 |
캐시 앤더스 (1976 - 1977 / 사별[1]) 마지 왐슬리 (1983 - 2019 / 사별[2]) |
가족 |
존 무어스 (삼촌) 나이젤 무어스 (형[3]) |
경력 |
리버풀 FC 회장 (1991.9.18.~2007.2.6.) 리버풀 FC 명예회장 (2007.2.6.~2022.7.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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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축구 경영인, 前 리버풀 FC 회장을 지냈으며, 은퇴 이후에는 명예회장을 지냈다.2. 생애
1991년 9월, 리버풀 FC의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당시 클럽에서 지분을 51%나 소유하는 대주주였고, 그 지분은 약 50년 넘게 무어스 家가 소유하고 있던 것이었다.1994년, 팀 레전드 출신인 그레이엄 수네스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결국 사임하고 또 다른 레전드 코치 로이 에반스 감독이 선임되었는데, 무어스는 이에 대해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결과가 훨씬 나빴기 때문에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라고 말하며 첫 사령탑 교체를 단행했다. 이후 무어스는 회장직을 유지하는 동안 구단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감독인 제라르 울리에를 에반스와 공동 감독으로 앉히는 파격적인 조치를 감행하는 등,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구단 중흥기의 서막을 알렸다. 울리에 이후에는 스페인 출신의 초신성 감독 라파 베니테스를 선임하며 이스탄불의 기적을 만들어내는 영광의 순간을 회장으로서 누렸다.
무어스는 수네스, 에반스, 울리에와 베니테스 체제를 거치며 안필드와 멜우드의 증축 및 개보수를 이끌어냈다. 무어스는 손꼽히게 부유한 자본가는 아니었으나, 늘 팀에 도움이 되는 투자를 하려고 노력했고, 구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크고 작은 혁신들을 감행했다.
그러나 결국 2007년, 미국 사업가인 톰 힉스와 조지 질레트 주니어의 구단 인수 제안을 받아 구단을 매각하게 되었다. 당시 리버풀의 다른 주요 주주들은 무어스와 보드진에게 인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무어스도 그러한 요구에 수긍해 구단을 매각했던 것. 하지만 힉스와 질레트는 구단 역대 최악의 구단주로 이후 막장 운영을 선보였고, 무어스는 뒤늦게 자신이 평생을 사랑해온 리버풀을 무능한 인물들에게 매각해버린 것에 대해서 큰 후회를 했다. 이후 무어스는 언론을 통해 구단을 매각한 것을 후회한다는 사실을 밝힌 후, 축구 경영인의 일을 그만두었다.
2007년, 회장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구단으로부터 명예회장으로 임명되어 작고하기 이전까지 명예직으로 대우받았다. 사실 무어스가 회장으로 선임되던 당시, 리버풀은 케니 달글리시 감독을 마지막으로 붉은 제국이라 불린 전성기를 마치고 긴 불모의 시기를 시작하게 되었기에 구단의 침체기 속에서 그는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야했다. 그러나 무어스의 운영 아래 리버풀은 에반스 감독과 리그 상위권으로 다시 올라섰으며, 울리에 감독과는 미니 트레블로 대표되는 2000년대 구단 중흥기의 시작을 알렸다. 또한 결정적으로 2005년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AC 밀란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베니테스 감독과 함께 이스탄불의 기적을 이뤄내 잊을 수 없는 순간을 팬들에게 선사했다.
3. 사망
2022년 7월 22일, 향년 76세의 나이로 고향인 잉글랜드 머지사이드 주 리버풀에서 사망했다. 구단은 그의 작고를 공식적으로 추모했고, 평생을 리버풀 팬이자 보드진의 주축으로 활약해 온 그의 삶을 리버풀 도시 전체가 추모했다.4.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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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FC 회장·구단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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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 국적 | 이름 | 기간 | 우승 기록 | 비고 |
초대 | 존 하울딩 | 1892~1896 | ☆☆ | 구단 창립자 | ||
2대 | 윌리엄 하울딩 | 1896~1904 | ★ | |||
3대 | 에드윈 베리 | 1904~1909 | ★☆ | 새 이사회 구성 | ||
4대 | 존 맥케나 | 1909~1913 |
최초의 감독 출신 회장 최초의 외국인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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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 존 애스버리 | 1913~1917 | ||||
6대 | 존 맥케나 | 1917~1919 | 최초의 중임 회장 | |||
7대 | 윌리엄 윌리엄스 | 1919~1924 | ★★ | |||
8대 | 리차드 마틴데일 | 1924~1926 | 재임 중 타계 | |||
9대 | 토마스 크롬튼 | 1926~1932 | ||||
10대 | 왈터 카트라이트 | 1932~1935 | ||||
11대 | 윌리엄 해롭 | 1935~1941 | ||||
12대 | 리차드 마틴데일 주니어 | 1941~1944 | ||||
13대 | W. H. 맥코넬 | 1944~1947 | ★ | 재임 중 타계 | ||
14대 | 스텐리 윌리엄스 | 1947~1950 | ||||
15대 | 조지 리차즈 | 1950~1953 | ||||
16대 | 윌리엄 해롭 | 1953~1956 | 재임 중 타계 | |||
17대 | T. V. 윌리엄스 | 1956~1964 | ★☆ | |||
18대 | 시드니 리크스 | 1964~1967 | ★★ | 새 이사회 구성 | ||
19대 | 해롤드 카트라이트 | 1967~1969 | ||||
20대 | 허버트 로버트 | 1969~1973 | ★★ | 재임 중 타계 | ||
21대 | 존 스미스 | 1973~1990 |
★★★★★★★★★★ ★★★★★★★★★★★★★ |
최장 기간 재임 회장 역대 최다 우승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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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 노엘 화이트 | 1990~1991 | ||||
23대 | 데이비드 무어스 | 1991~2007 | ★★★★★★★★★★ | |||
24대 | 톰 힉스 & 조지 질레트 주니어 | 2007~2010 |
최초의 공동 구단주 최초의 미국인 구단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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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대 | 마틴 브러튼 경 | 2010 | 구단 매각을 위한 임시 구단주 | |||
26대 |
존 헨리 ( 펜웨이 스포츠 그룹) |
2010~ | ★★★★★★★★ | |||
★
프리미어 리그 / ★
FA컵 / ★
EFL컵 / ☆
EFL 챔피언십 ★ UEFA 챔피언스 리그 / ★ UEFA 유로파 리그 / ★ UEFA 슈퍼컵 / ★ FIFA 클럽 월드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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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항 | ||||||
* 리버풀 FC의 회장은 구단 이사회가 선출하는 최고직이었으나 데이비드 무어스부터 구단 지분 과반 이상을 소유하게 되었고 이후 외국 자본이 구단을 소유하며 구단주로 명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