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던컨 4세 Donnchadh IV |
출생 | 미상 |
스코틀랜드 왕국 | |
사망 | 1353년 |
스코틀랜드 왕국 | |
아버지 | 던컨 3세 |
어머니 | 조앤 드 클레어 |
형제 | 이사벨라 맥더프 |
부인 | 메리 드 몬테마르 |
자녀 | 이사벨라 맥더프 |
직위 | 파이프 백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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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코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더플린 무어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에 생포된 뒤 에드워드 발리올의 편으로 전향했다가 도로 데이비드 2세 편에 섰으나 할리돈 힐 전투에서 또다시 생포되었다.2. 생애
아버지 던컨 3세는 스코틀랜드의 명문 귀족인 맥더프 가문의 일원이자 파이브 백작령의 지배자로서, 스코틀랜드 국왕 알락산더르 3세의 장남이자 상속자인 알락산더르 왕자의 후견인을 맡았다. 1284년 알락산더르 왕자가 급사한 뒤 다른 스코틀랜드 영주들과 함께 노르웨이의 마르그레트 에이릭스도티르를 알락산더르 3세의 후계자로 인정했다. 1286년 4월 알락산더르 3세가 사고사한 뒤 귀족 회의에서 6명의 수호자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러나 1289년 브리킨 인근의 피틸로크에서 친척이자 알락산더르 3세의 보안관이었던 휴 애버네시에게 피살되었다. 어머니 조앤 드 클레어는 제7대 글로스터 백작 길버트 드 클레어의 딸이다.던컨 3세의 외아들이었던 그는 아버지가 살해된 뒤 파이프 백작령을 계승했지만 아직 어렸기에 세인트 앤드류스 주교인 윌리엄 프레이저의 후견을 받았다. 1292년 존 발리올이 스코틀랜드 국왕으로서 대관식을 거행했을 때, 본래는 파이프 지역의 모르마레를 맡은 인물이 군주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야 했다. 모르마레는 파이프 백작이 대대로 맡았지만, 그가 아직 어렸기 때문에 파이프 출신 기사가 대신 그 역할을 맡았다. 이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드를 침공한 뒤 잉글랜드에 인질로 보내졌다. 이 때문에 1306년 스콘에서 열린 로버트 1세의 대관식에서는 그를 대신해 여동생이자 뷰컨 백작 존 코민의 아내 이사벨라 맥더프가 대관식에 참석해 로버트 1세에게 왕관을 씌워줬다.
배넉번 전투 1년 후인 1315년 잉글랜드에서 돌아온 던컨 4세는 8월 23일 크라이튼에서 로버트 1세와 계약을 맺고 파이프 백작령을 돌려받는 대신 자신이 자녀 없이 죽으면 사촌인 멘티스 백작 앨런 1세의 아들인 앨런 2세 스튜어트에게 파이브 백작위를 주기로 약속했다. 이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간의 평화 협상에 참여했으며, 1329년 로버트 1세가 사망한 뒤 5살된 어린 아들 데이비드 2세를 새 국왕으로 옹립했다. 1332년 8월 11일 더플린 무어 전투에서 섭정인 돔놀 2세의 지휘하에 에드워드 발리올을 스코틀랜드 왕위에 올리기 위해 쳐들어온 잉글랜드 귀족들과 격돌했지만 참패를 면치 못하고 생포되었다. 이후 발리올을 스코틀랜드 국왕으로 받들기로 했고, 1332년 9월 24일 스콘에서 에드워드 발리올의 대관식에 참석했다.
1332년 12월 에드워드 발리올이 아난 전투에서 스코틀랜드 반군에게 축출된 뒤 도로 데이비드 2세 편으로 돌아섰다. 1333년 7월 19일 스코틀랜드군대의 일원으로 할리돈 힐 전투에 참여했다가 또다시 생포되었고, 나중에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났다. 이후 조용히 지내다 1353년 사망했다.
3. 가족
- 메리 드 몬테마르(1297 ~ 1371년 이후): 초대 몬테마르 남작 랄프 드 몬테마르와 에어커의 조앤[1]의 딸.
- 이사벨라 맥더프: 파이프 여백작. 콜라티의 윌리엄 램지와 초혼, 로버트 2세의 둘째 아들 월터 스튜어트와 재혼, 업셋링턴의 토마스 비셋과 삼혼, 마치 백작 패트릭 5세 드 던바의 아들 존 드 던바와 사혼. 1371년 로버트 2세의 셋째 아들이자 멘티스 백작인 로버트 스튜어트에게 파이프 백작령을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