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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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더 오리올스 THE ORIOL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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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액 부문 | 개척자 (Early Influences) | ||
멤버 | 알렉산더 샤프, 조지 넬슨, 조니 리드, 토미 게이터, 소니 틸 | ||
입성 연도 | 1995년 | }}}}}}}}} |
더 오리올스 The Oriol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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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성 | 1947년경 |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 |
멤버 |
데이비드 워렌 레이 아폴로 클락 워커 드와이트 대처 |
전 멤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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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R&B, 두왑 |
활동 |
1947년경 ~ 1955년경 1956년경 ~ 1959년경 ? ~ 1960년대 중반 1966년경 ~ 1975년경 1977년 ~ 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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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알앤비 그룹. 두왑에서 중요한 그룹이다.2. 상세
2.1. 제1기
1947년경에 소니 틸 (Sonny Til) 이 활동하다가 조지 넬슨 (George Nelson), 알렉산더 샤프 (Alexander Sharp), 토미 게이터 (Tommy Gaither) 를 만나 결성했다. 당시 그룹명은 더 바이브라 네어스 (The Vibra-Naires) 였으나 녹음 계약을 따내고선 더 오리올스로 변경하였다. 이후 조니 리드 (Jonny Reed) 가 영입되고, 소니 틸이 메인보컬로 1948년 7월에 녹음한 It's Too Soon To Know가 큰 인기를 얻었다.계속해서 히트곡이 나왔으며, 인기가 대단하여 공연하면 소녀팬들이 난리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다 1950년 11월, 교통사고가 발생해 게이터는 사망하고 넬슨과 리드는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1] 그러자 일단 멀쩡한 둘이서 활동하다, 곧 새 멤버 두 명을 영입했고 중상을 입었던 멤버들도 모두 돌아왔다.[2] 이후 1952년, Baby Please Don't Go가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1953년 초 넬슨이 술 문제로 그룹을 떠나게 됐다. 빈 자리는 그레고리 캐럴 (Gregory Carroll) 로 대체되었고, 그해 6월에 녹음한 Crying in the Chapel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다 멤버가 떠나고 매니저도 떠나면서 그룹은 오래가지 못하고 해산되었다.
2.2. 제2기
홀로 남은 소니 틸은 다른 그룹으로 떠나, 그 그룹으로 두번째 오리올스를 시작했다. 비제이 레코드사와 계약하고 계속해서 활동을 이어가지만, 1959년경에 소니 틸의 차가 압류된 것을 본 멤버가 떠난 것을 마지막으로 두번째 오리올스는 끝나고 말았다.2.3. 제3기
그럼에도 소니 틸은 오리올스를 계속했다. 잠시 솔로로 활동하긴 했으나, 다시 오리올스는 결성되었고 녹음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세번째 오리올스도 1960년대 중반에 해체되었다.2.4. 제4기
이후 1966년에 소니 틸은 자신의 팬인 바비 토마스 (Bobby Thomas) 를 만났고, 우연히도 본래 오리올스의 초창기 이름하고 이름이 같았던 그룹으로 네번째 오리올스가 시작됐다. 그레고리 캐럴이 때때로 함께했으며, 1975년까지 녹음했으나 결국 해산하고 만다.2.5. 제5기?
그 뒤 소니 틸은 잉크 스파츠[주의]에 들어갔으며, 1977년에 조지 그랜트 (George Grant) 가 영입되자 잉크 스파츠 앤 더 오리올스 (The Ink Spots and The Orioles) 로 투어를 시작했다. 그룹은 1977년에 잠시 녹음한 바 있다.2.6. 마지막 재결성
끝내 1977년, 소니 틸은 제2기의 두 멤버와 제3기의 한 멤버를 모아 여섯 번째 오리올스를 시작했다. 그 뒤 1981년에 소니 틸이 53세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룹은 계속되었다. 소니 틸의 사후 바비 토마스가 자신만의 오리올스를 결성해서 활동하기 시작했다.3. 헌액
- 로큰롤 명예의 전당 (1995)
- 보컬 그룹 명예의 전당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