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클레이튼 Doctor Clayt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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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피터 조 클레이튼[A] Peter Joe Cleighton |
이명 |
제시 클레이튼 Jesse Clayton |
출생 | 1905년 4월 19일 |
미국 조지아주 아메리커스 | |
사망 | 1947년 1월 7일 (향년 41세) |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 |
직업 | 가수, 작곡가 |
장르 | 블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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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가수 겸 작곡가.2. 생애
1905년 4월 19일, 조지아주 아메리커스에서 태어났다.[2] 많은 자료들이 그가 부모님과 세인트루이스로 이주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세인트루이스에서 결혼해 4명의 자녀를 두었고, 공장 노동자로 고용되었으며 가수 경력을 시작했다.[A] 1930년 9월 9일, 시카고에서 신원불명자 2명과 2곡을 녹음했다. 이후 1935년 7월 27일, 시카고에서 비어트리스 "툿스" 윌리스와 여러 곡을 녹음했다.[B]그러다 1937년에 집에 화재가 나서 본인을 제외한 온 가족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그는 평생 알코올 의존증에 시달렸고 무모하게 살기 시작했다. 이에 관해 빅 빌 브룬지는 그가 인품은 좋았으나 방을 구하지 않았고 겨울엔 테니스화를 신고 당구대, 골목, 지하실에서 잤다고 회상했다. 로버트 락우드는 "그와 녹음을 마치고 세인트루이스로 돌아오니 그는 신발이 없었다. 녹음을 마치고 그날 밤 클럽에서 온갖 사람에게 술과 음식을 사줬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의식을 잃자 사람들은 그가 가진 모든 것 (코트, 신발, 돈) 을 훔쳐갔다. 그가 일어났을 땐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고 회상했다.[C]
그는 시카고로 이사한 뒤 로버트 락우드와 음악적 파트너가 됐고 그의 음악 경력을 쫒고자 했다.[A] 1941년 및 42년, 그리고 1946년 8월 7일에 곡들을 녹음했다.[B] 1941–42년 녹음 때 이런 일화가 있었다. 데카 레코드와 연이 있던 찰리 조던이 그를 도와줬고 그와 락우드는 시카고로 떠났다. 찰리 덕분에 데카 레코드에 녹음하기로 되어있었지만 결국 블루버드 레코드의 스카우트 레스터 멜로즈 (Lester Melrose) 와 연결됐다.[C]
그는 시카고의 클럽에 정기적으로 등장했으며, 그의 음반은 큰 인기를 얻었다. 1947년 1월 7일, 시카고의 쿡 카운티 병원에서 폐결핵으로 숨졌다. 에디 보이드 (Eddie Boyd) 는 사망 당시 그가 매우 가난해 안장에도 타인의 도움이 필요했다고 말하며 그가 무식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장례식엔 빅 빌 브룬지를 포함해 10명만이 참석했다. 사후 일리노이주 알십의 레스트베일 묘지에 안장됐다.[B][C][11]
[A]
Edward Komara · Peter Lee, "The Blues Encyclopedia" (Routledge · 2004.7.1.), 213쪽
[2]
Bob L. Eagle · Eric S. LeBlanc, "Blues: A Regional Experience" (ABC-CLIO · 2013.5.1.), 101쪽
[A]
[B]
"
Doctor Clayton discography", wirz.de, 2023년 1월 5일 확인
[C]
Jeff, "
Big Road Blues Show 10/12/14: I Was Born In A Lion’s Den, Raised On A Smokin’ Forty Five – Doctor Clayton & His Buddies", sundayblues.org, 2014.10.12., 2023년 1월 5일 확인
[A]
[B]
[C]
[B]
[C]
[11]
Jim O'Neal · Amy van Singel, "The Voice of the Blues: Classic Interviews from Living Blues Magazine" (Routledge · 2013.9.5.), 245쪽